맛있는 음식이 착한 음식이다?

시쳇말로 남자들은 "예쁜 여자가 착한 여자다"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와 유사한 말들을 꼽아보자면 "공부 잘하는 자식이 효자" 라든가, "돈 잘버는 남편이 좋은 배우자" 등등이 있겠죠? ^^ 이런 게 모두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맛있는 요리가 착한 음식"이라는 다소 엉뚱한 모토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맛있게 먹으면 그것만큼 착한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처음으로 거위간을 맛보게 되었을 당시의 감동을 되짚어 보자면, 그 고소하면서도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는 "착한 맛" 이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위간 요리의 비밀을 벗겨보니, 참 잔혹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세계 3대 진미라고 불리우는 Foie Gras는 "기름진 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조류의 간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어요? 원하는 사람은 많고, 물량은 적으니 인간의 탐욕은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게 만듭니다. 거위 부리를 억지로 벌리고 깔때기를 꽂은 다음 엄청난 양의 옥수수 사료를 거위 입안에 밀어 넣습니다. 거위는 엄청난 사료를 먹고, 엄청나게 비대해진 지방간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맛있는 거위간"을 과연 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과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저는 푸와그라를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과 착한 음식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지요. 

엄연히 말하자면, 살생하여 만든 모든 육고기들 중 무엇인들 잔인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과정에서의 윤리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잡아먹고 먹히는 과정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걸 비윤리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잡아먹는 자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바다의 잔혹한 현실

영화 오션스는 아름다운 바다와 슬픈 바다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끝없이 푸르고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으로 인해 오염되는 모습과 함께, 몇조각의 샥스핀 때문에 지느러미가 잘린 채 바다에 버려져 죽어가는 상어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2010년 3월 13일부터 25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등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총회에서 거래제한 의제로 오른 동식물은 42종에 이르렀지만, 상당수가 거부당했고 상어 보호도 부결되었습니다. 미국 등은 이번 회의에서 상어를 부속서 II종 동물에 넣어 거래를 제한하자고 주장했으나 중국의 반대가 있었지요. 중국은 “상어가 멸종 위기에 있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며 반대했다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중국은 자국에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 음식인 샥스핀 수요가 많아 요지부동인데다, 일본까지 가세했다고 하네요.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국가간 힘겨루기가 야생동식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오늘날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상어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샥스핀 요리가 없으면 제대로 된 잔치로 여기지 않는다고 해요. 그렇게 좋아하지만 너무 비싸 잔치 때나 맛보던 샥스핀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신흥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상어 수요가 폭증했고,아시아는 물론 머나먼 중남미 어부들까지 상어잡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샥스핀 수요 때문에 귀상어와 백상아리 개체 수가 15년 전보다 70%나 감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중남미 해역에선 화이트팁 상어 등 일부 종이 자취를 감췄구요. 2003년 유엔 식품농업기구(FAO)가 집계한 전세계 상어 폭획량은 약 85만톤 규모로 50년 전보다 세배 증가했습니다. 중남미 에콰도르에서 2003년 아시아로 수출된 샥스핀은 상어 30만마리 분량이었으니 얼마나 엄청난 수요가 있는지 아시겠지요.

아시아에서 상어 지느러미는 1㎏ 당 약 70만원에 거래됩니다. 어부 입장에선 큰 상어 한마리를 잡으면 수백만원을 챙길 수 있는 고소득 품목입니다. 미국 환경단체 와일드에이드(WildAid) 대표 피터 나이츠는 “상어 고기는 별 맛이 없어 과거엔 상어잡이로 큰 돈을 벌 수 없었지만 결혼식 등 잔치마다 샥스핀을 대접하는 중국인이 상어 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다”고 말합니다. 아시아 해역은 이미 상어 자원이 고갈 수준에 이르러 많은 중개상이 중남미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샥스핀을 조달하고 있구요. 이에 2004년을 기준으로 에콰도르 등 60개국이 상어잡이를 금지했지만 ‘우연히 그물에 걸린 상어는 팔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악용한 편법 포획과 수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홍콩,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폴 순으로 샥스핀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입니다.이들 나라들은 큰 잔치가 있을 때면 샥스핀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곤 하는데, 일단 결혼식 피로연에서 제공되는 샥스핀 스프는 약 10인분당 상어 한마리분의 샥스핀이 필요하다고 하고요. 단 한번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약 300명의 하객이 식사를 했다면 상어 30마리가 희생된 것입니다. 여기에 일반 음식점, 호텔 등에서 소비된 샥스핀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아시겠지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상어는 지느러미 이외 다른 부위는 별로 환영을 받지못해 대부분의 경우 잡히는대로 지느러미만 떼어내고 버려집니다. 더 이상 헤엄을 못 치게 된 상어는 얼마 못 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샥스핀이 없어도 잘 살아온 우리들이라도 가능하면 상어 보호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샥스핀을 조금 멀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샥스핀을 즐겨 드시겠다는 당신께 마치는 꼬리글

샥스핀에는 다른 어떤 생선 제품보다도 많은 수은이 들어 있어 건강에도 해로운 것으로 여러 조사를 통해 발표되고 있습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와일드에이드(Wildaid)는 방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사결과 방콕에서 구입한 샥스핀중 70%가 극히 높은 수준의 수은이 함유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와일드에이드는 방콕 차이나타운에서 임의로 샥스핀 10개 샘플을 구입, 태국과학기술연구소에 의뢰해 검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7개 샘플에서 유독 중금속인 수은의 함유 수준이 허용 한계인 kg당 0.05mg 이상을 넘었으며 한 샘플에서는 한계수치보다 42배나 높은 kg당 21.02mg이 함유되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스티븐 갤스터 와일드에이드 공동 사무국장은 "태국과 다른 국가들에 공급되고 있는 샥스핀이 소비자들이 알지도 못한 채 수은에 심하게 오염됐다는 연구결과에 우리들도 놀랐다"고 전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조사가 있었는데, 태국 출라롱콘대학 연구소가 태국 차이나 타운인 야와랏에서 판매되는 샥스핀 45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조사한 결과 15개에서 태국 보건부가 정한 한도 이상의 수은이 검출되었습니다. 수은 오염도가 가장 심한 것은 해양식품에 대한 수은 오염 허용한도인g당 0.5 ㎍의 7배 이상인 3.55㎍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와일드에이드 태국지부는 출라롱콘 대학의 조사결과가 지난해 7월 발표된 와일드에이드의 조사결과와 유사하다면서 전세계에서 채취된 샥스핀은 대부분 홍콩을 통해 거래되며 이번 샘플도 모두 홍콩에서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나 샥스핀 요리를 즐기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수은은 인간의 불임 및 심각한 출산 장애와 관련이 있으며 지각기관 손상, 면역체계와 심장 기능 손상, 태아 뇌세포 형성 기능 저해, 어린이 학습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 수은이 많이 축적되면 정자수치가 떨어지고 뇌신경계의 이상을 초래하며, 기형아를 출산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샥스핀은 무색, 무미, 무취의 식재료입니다. 여러가지 재료들과 어우러져 맛을 내는 것이지요. 샥스핀 자체가 너무 너무 맛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좀 오버구요. 샥스핀 요리에 함께 들어간 여타 재료들이 너무 맛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죠? 최근에는 젤라틴을 활용해 샥스핀과 똑같은 식감을 내는 식재료들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몸에도 안 좋고, 아무런 맛도 없고, 가격만 비싼 요리...샥스핀이 아직도 너무 좋으신가요?

이제 꼬리가 아닌, 고리를 끊어요!

구입하지 않을 때 도살도 끝납니다. 이윤이 많이 남는 샥스핀을 음식점 주인들이 순순히 포기할 리 없으니, 이제는 소비자가 현명하게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자연이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다는 주장이 그닥 와닿지 않으신다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착한 식습관"을 몸에 익히자구요. ^^

참고자료: 한겨레 2010년 3월 22일자 조기원 기자
              국민일보 2006년 1월 6일 태원준 기자 
              동아일보 2002년 8월 1일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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