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계절을 타는 편이었는데 그걸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건지...여하튼 저는 요즘 봄 타고 있는 중(?)입니다. 성시경의 노래가 미치도록 감미롭게 들리고, 밖으로 뛰쳐나가 산보하고 싶어지고, 향수를 아침에 뿌리고서 '으앗. 너무 향기로와!!! ㅠ.ㅠ' 하면서 내 향기에 스스로 도취되어 연신 손목을 킁킁거리게 됩니다. 사소한 감정들의 증폭, 그것이 바로 제가 요즘 봄을 탄다는 증거입니다.

어제도 불어오는 봄바람에 괜히 마음 설레이며 퇴근길 신호등을 건너고 있었을 때에 사건은 벌어졌어요. 저는 운명처럼 편의점 유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제 어묵바 단 3일간 할인 1000원 → 500원!!! " 사실 저는 혼자 뭔가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혼자 먹는 건 재미가 없거든요. 게다가 편의점의 어묵바는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렴한 가격이 주는 불량 식품의 강한 선입견도 한몫했죠. 하지만 "수제"라는 문구와 자그마치 50% 할인이라는 점, 게다가 3일이라는 미치도록 설레이는 한정감...!!! 문제의 "문어바"를 500원에 구입하고서 집으로 왔죠. 

집에 있던 칠리소스에 따끈한 문어바를 찍어 한 입 베어 무는데, 그 순간 저는 감동했습니다. 미스터 초밥왕 못지 않은 폭풍 리액션이 나올 뻔 했어요. 쫄깃한 문어의 식감과 생선 연육의 조화, 어묵바가 매콤한 칠리소스와 만나 한데 어울어지는 조화!!! 꺄앗!!! 이거야~ 내일부터 출근할 때에 아침밥은 먹지 않고 아침마다 어묵바를 한개씩 먹을까? 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볼 정도였습니다. 만약 앞으로 당신이 어디에선가 30대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이른 아침에 편의점에서 혼자 울면서 문어바를 먹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건 바로 접니다. (흐음....상상해보니 참.... 주접스럽네요)

행복에 가격표가 있을까요? 다 큰 어른이 이 나이에 고작 500원짜리 어묵바를 먹고서 이렇게까지 행복해 해도 되는 건가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명품 가방, 해외여행 같은 값비싼 행복을 찾는 게 더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잖아요. 나날이 사람들의 경제적인 수준은 올라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럭셔리한 방식으로 여가를 즐기고, 고가의 물품을 소비하여 더 값비싼 행복을 *구입*하고 있죠.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날이 더 불행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행복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서를 경험하는 심도보다 빈도가 더 중요하다는 연구(Diener, Sandvik, & Pavot, 1991)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쉽게 풀어 이야기 하자면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얼마나 강한 정서적 자극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1년에 한번씩 사는 사람보다도 500원 짜리 - 1년이면 18만2천5백원에 해당하는 - 문어바를 매일 한 개씩 먹는 사람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행복엔 가격표가 없습니다. 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큰 돈을 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내가 지금 무얼 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500원짜리 문어바를 오늘도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취해 오늘 저는 기쁘게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행복은 참 사소하고도 작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죠. 그리고 이렇게 작은 일에 행복해 할 수 있는 감성을 제게 주신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P.S. 편의점 앞에 도착한 제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드네요. 환상적인 천상의 맛을 선사하는 어묵바 50% 할인행사는요.....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나봐요.... 행복의 빈도? 사소한 행복? 큰 깨달음? 으아아아앙!!!! 이게 다 무슨 헛소리인가요.... 그냥 50% 할인해 주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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