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마트를 가보면, 청과를 판매하는 곳엔 수박 시식 코너가 꼭 마련되어 있고 거기에 설치된 작은 스피커에서는 청개구리 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 향기! 수박 한 통을 구입해서 다 먹을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시식용으로 잘라 둔 수박 한 조각을 덥썩 베어 물면 더위가 싹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나름의 알뜰한 여름나기 비법입니다. 한 조각이 너무 작아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한 쪽에 만족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어제 이마트 1층의 식품코너에서 수박 한 조각을 맛나게 먹고서 2층 고객센터 앞에 마련된 의자에 잠시 앉아서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할머니가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 옆 쪽으로 걸어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양손으로 가리고 있었으나, 수박 세 조각을 소중하게 쥐고 계셨습니다. 시식코너에 보면, 정말 양손 가득 과일을 쥐고 가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1층 시식코너부터 2층 고객센터 앞까지 그렇게 수박을 양손에 들고 오시다니, 살짝 불편한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저렇게 하실 것까지 있을까...?

그런데 다음 순간, 할머니가 향하는 곳에서 어떤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웃음을 지으며 도착한 곳에는 휠체어에 앉은 뇌성마비의 30~40대의 아들로 보이는 남성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양손에 쥐고 오신 세 조각의 수박을 아들에게 먹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들은 민망한 듯, 처음엔 잘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저었으나 연신 권하는 어머니의 몸짓에 못 이기듯이 수박을 한입 베어 드시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그곳에선 아삭거리는 수박의 향기와 할머니의 아들이 수박을 먹는 소리, 그 모습에 행복해 하는 할머니의 미소가 합쳐져 작은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그 2층에서 펼쳐진 일을 보지 못하고 수박 시식코너에서 세 조각의 수박을 억척스럽게 들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만 보았다면, 아마 눈살을 찌푸리고 그냥 지나쳤겠지요. 그런데 어제 그 이마트의 고객센터 앞에서 본 광경에 조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인생이라는 기나긴 이야기를 모두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어떤 행동 중 일부분만 보며 욕했던 일들이 떠올랐거든요. 내 지갑을 몰래 가져 갔던 사람이 사실은 굶주린 가정을 짊어져야 했던 가장일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고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지나간 그 여자는 어쩌면 아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던 한 엄마일지도 모릅니다.

그 수많은 구구절절한 인생의 이야기를 담고서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갖고서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말을 전하고, 어떤 눈빛을 보내게 됩니다. 아기새를 위해 벌레를 물고 오는 어미새 같았던 그 할머니...휠체어에 있는 아들을 위해 수박을 쥐고 타인들의 따가운 눈빛을 받아가며,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 먼 곳까지 오셨던 그 분처럼 모든 이에게는 자신 만의 이유와 사연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연을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감히 에티켓이니, 도덕이니 하는 말들을 도구로 삼아 타인을 욕할 수 있을까요.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루카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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