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피정]에 가본 것은 올해 초여름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조금은 불편한 사정이 있긴 했지만, 우연치 않게 알게 된 기회였기에 제멋대로 "이건 분명 하느님의 부르심이야"라고 단정하고서 가게 된 것이었지요. 대학원 수업에 직장생활까지 병행하는 터라 피정을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도 굉장한 도전이었고, 게다가 워낙 불편한 자리를 못 참는 성격인데 그런 복잡한 상황을 참는다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가기로 결심!

 이틀간의 침묵피정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온전히 피정의 기쁨을 즐기지 못했답니다. 이상하게 별 것 아닌 일들이 머릿속에 못 박혀서 "하느님과 저의 관계"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거에요. 그러다보니 애초에 피정을 가겠다고 나선 내 자신이 미웠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나를 집어삼켰고, 그런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다시 미워졌고, 눈물만 자꾸 걷잡을 수 없게 흐르고 또 흐르고...

 영화에서 보면 가녀린 여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은 구슬처럼 또르륵 흐르던데, 저는 항상 눈물과 함께 엄청난 콧물이 주책없이 함께 나오거든요. 눈물보다 코 풀기에 정신없어 훌쩍거리며 울다보면,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으잉! 난 여주인공 팔자는 아닌가봐 ㅠ,ㅠ)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로 이틀을 보내자, "아니, 하느님!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거예욧!!??"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더라구요. 

 그렇게 이틀을 끝마치게 될 때 즈음, 고해성사의 시간이 있다고 누군가 말하는데 하느님께 단단히 삐진 저는 고해성사고 뭐고 집어치우고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해성사의 시간이 거의 끝나 가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픈 겁니다! 방출 욕구를 해결하고 오는 길에서 고해성사를 하라는 진짜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해성사가 시작되자마자, 신부님 앞에서 다시 엉엉 울어버렸답니다. 이번에도 눈물은 줄줄, 콧물은 펑펑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 않더군요. "신부님...흑흑..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왜 저는 그게 안 될까요. 그게 안되는 제 자신이 너무 밉고 한심하고..엉엉...훌쩍훌쩍"

 한참을 듣고 계시던 신부님이 정말 따뜻하게 해주신 말씀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아닌 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요. 사제인 저 역시도 그렇거든요. 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해서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시는 분이니까요."

 아...! 결국 문제는 제 오만함이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교양 있는 척, 쿨한 척,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 행동할 수는 있어도, 한 분만은 속일 수 없었던 거죠. 주님은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나의 부족함까지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고 저를 이틀동안 질질 짜고 있게 만드셨나봐요.

 아직도 가끔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조금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주님이 도와주셨고, 함께해준 요세피나 덕택에 성장통을 잘 이겨냈답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뻔하디 뻔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저는 전보다 조금은 자라났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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