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어느 일요일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로댕전을 찾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만큼이나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꽤 스케일 크고 유명한 작품들도 여러 점 보였죠.

하지만 전시된 작품들은 저에겐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10년전 파리의 로댕박물관에서 느꼈던 전율이 없었어요. 근육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는 듯했던 역동성도 느낄 수 없었고,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 듯한 사나이의 표정도 와닿지 않았어요. 똑같은 작품을 다시 본 것인데도, 예전에 느꼈던 그 수많은 감흥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적잖이 당황했어요. 내가 정서적으로 그토록 늙었던가? 작년에 르누와르전을 보기 위해 같은 장소인 서울시립미술관에 왔을 때에 나는 정말 행복해하며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끽했는데!? 도대체 감동이 없는 이유가 뭐지? 내가 최근에 너무 피곤했던가? 아니면 전시장 조명이 적절하지 않았나? 이곳에 사람이 너무 많은가? 회화작품이 내 취향에 더 잘 맞나? 혹시 배가 고파서 이러나 싶어서 베이글과 생과일쥬스까지 먹고 전시장을 둘러보았으나, 변화 없음. 이대로는 답답해 죽을 지경!!! 이건 대체 뭔가 싶었으나 끝내 해답을 찾지는 못하고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하여 그곳에서 구입한 작은 souvenir들을 직장동료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전시가 어땠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냥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감동이 없었더라는 제 말을 듣던 직장상사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어요. "큰 조형물은 야외에서 봐야 멋지잖아!"

아! 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수수께끼가 단박에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파리의 Musée Rodin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거대한 조형물들은 야외의 푸른 잔디 위에 햇빛을 받으며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의 일부인양 너른 공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일광 아래 세워져있던 "생각하는 사람"이 서울의 좁은 건물 안에 들어와있으니 답답해 보인 것이 당연했죠. 제가 파리에서 본 그 작품과 서울에서 본 이 작품은 분명 같은 작품이었으나, 동시에 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요. 그 곳을 떠나면 빛을 잃는 수많은 것들.... 아마도 한정된 장소와 시간이 부여하는 희소성으로 인해, 그것들이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이 모두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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