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했던 분들 가운데 프랑스 파리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영어가 잘 안통하는 점을 꼬집는 사람부터 쌀쌀맞은 대접 때문에 짜증이 났다는 사람까지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파리지앵들이 타인에게 약간은 무관심하고 약간은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그들의 무심한 태도가 야속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하기는 커녕 굉장히 편하고 합리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상대를 무시한다기 보다는,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남의 일에 먼저 간섭하지는 않지만, 도움을 요청하면 적절히 응해 준다고나 할까요? 이들의 행동을 얼핏 보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개인주의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습니다. 이기주의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타인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라면, 개인주의는 각자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니까요.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신, 똘레랑스(tolelance)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의 생각이나 주장을 존중하는 것이지요. 너의 생각, 너의 정치적 성향, 너의 가치관, 너의 성적 지향성, 너의 종교가 나와는 다르더라도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그것을 존중하겠다는 자세죠. 나와 당신이 서로 다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관용의 표현이기도 하며, 나의 권리만큼이나 네 권리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철저한 개인주의의 발로입니다.

'사회적 연대'를 의미하는 솔리다리떼(solidarité)는 똘레랑스 정신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축입니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거나 지지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프랑스인들이 파업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은 우리네와 다릅니다.

어느 날인가 등교길에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다가 다음 역에서 모두 내리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파업으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니 다음 역에서 내려서 다른 교통수단을 타고 가라는 겁니다 -_-;; 이런 퐝당 씨추에이션에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기 짐을 챙겨 들고서 별 군소리 없이 다음 역에서 내립니다. 파업이 빈번한 탓도 있겠으나, 타인의 파업할 권리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마르세이유 여행을 혼자 계획하다가 현지 교통노조 파업으로 인해 여행일정 자체를 취소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르세이유 여행을 못 간 것은 무지 아쉽지만, 일종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인이 모두 *좋은 쪽의 개인주의자*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자는 건 아니며, 그네들의 사상이나 이념이 우월하다는 뜻도 전혀 아닙니다. 다만 미국식 성과중심의 자본주의나 우리네의 "국가가 잘되야 국민이 잘산다"는 집단주의 사고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는 거죠. 조금은 덜 효율적일지 모르겠으나, 집단의 발전이나 이해 관계를 이유로 일부의 희생이 마치 당연한 것인양 강요되어서는 안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자본주의를 사랑하는, 그래서 어쩌면 살짝 우편향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체가 잘되려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끔 소름이 돋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평생 주류에 속할 것이라는 극도의 오만함을 떠벌리는 것 같아서요.  지금 우리가 짓밟은 타인의 권리는 물푸레나무 도끼가 되어 우리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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