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데 직장 상사가 웃으며 말했었다.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하는 언론 보도들이 자신의 눈에는 일종의 음모 같다고, 원래 세상은 때로는 좀 더워지기도 하고 때론 추워지기도 하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괜한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고 그분은 말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선 새로운 소비가 끊임없이 생겨야 하니,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하며 전기차 같은 새로운 소비트렌드를 만드는 게 아니겠냐고 말이다. 이렇게 거대한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하찮고 작은 존재가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냐고 그분은 반문했다.

정말 그런걸까?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나는 워낙 귀가 팔랑거리는 사람이라서, 그 말을 듣고보니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파괴되는 환경에 대한 내 걱정이 유난스러운 기우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환경에 대한 걱정을 잠시 내려놓으니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그 대화가 떠오르고, 그럴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전보다 더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정말 어쩌나.

COVID-19를 겪고, 유래없이 기나긴 장마를 보내면서 2020년의 봄과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여러모로 힘들다. 이러한 힘겨움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제일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건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주던 안온함이 되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앞으로 마스크 없이 청량한 공기를 맡으며 저녁 산책을 나갈 수 있을까? 전세계에 불어닥친 불황이 혹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하진 않을까? 뉴욕911테러로 잠시 뉴욕 상공에 비행기가 뜨지 않아 인공적인 구름이 잠시 생성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뉴욕 기온이 상승했는데 (당시의 기사보기), 지금은 전세계 항공 교통이 급감했으니 앞으로 전세계 기후는 어떻게 될까?

그 어떤 질문에 대한 답도 우리는 모른다. 그저 추정할 뿐 그 누가 정확한 답을 알까? 혹자의 말처럼 지구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인간은 작은 존재일 뿐이니 별탈 없을 거라고 나이브하게 믿고 싶지만, 이 거대한 지구에 소수에 불과한 인류가 끼친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변화는 너무 드라마틱해서 이제는 소름이 끼친다.

그때 대화를 떠올리며 지금 나는 후회한다. 나는 침묵해서는 안되었다. 불같이 화를 냈어야 했다. 침묵조차도 의사소통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간과했다. 침묵은 곧 암묵적 지지를 의미한다. 부끄럽게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일정 지분의 책임이 있다. 침묵하고 방조한 일에 대한 대가를 물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40년간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연을 파괴하는 데에 동조해왔으니 내가 앞으로 겪을 일들은 어쩌면 내 행위의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무고한 어린 아이들과 동물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번 폭우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난 물에 휩쓸려 지붕에 올라간 소가 내려오지도 못한 채 오도가도 못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온다. 소를 끈으로 묶어 사람들이 억지로 끌어당기니, 소가 아슬아슬하게 계단으로 밀려 내려 오다가 그만 발목이 부러졌고, 계단 위로는 피가 낭자하게 흐른다. 안타까움에 그만 눈물이 왈칵 나는데, 이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대로는 지구에 사는 생명들 중 어느 하나도 괜찮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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