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한다. 그러면 우리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로 갚아줄거야. 네가 내게 고통을 주었으니까 나도 너한테 고통을 줄거야. 네가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 난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 사람은 더욱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쌍방 모두가 갈수록 더 마음이 아파질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애정과 도움이다. 어느 쪽도 앙갚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화가 치밀었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자신의 화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에서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하게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뿐이다.

- 틱 낫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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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계절을 타는 편이었는데 그걸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건지...여하튼 저는 요즘 봄 타고 있는 중(?)입니다. 성시경의 노래가 미치도록 감미롭게 들리고, 밖으로 뛰쳐나가 산보하고 싶어지고, 향수를 아침에 뿌리고서 '으앗. 너무 향기로와!!! ㅠ.ㅠ' 하면서 내 향기에 스스로 도취되어 연신 손목을 킁킁거리게 됩니다. 사소한 감정들의 증폭, 그것이 바로 제가 요즘 봄을 탄다는 증거입니다.

어제도 불어오는 봄바람에 괜히 마음 설레이며 퇴근길 신호등을 건너고 있었을 때에 사건은 벌어졌어요. 저는 운명처럼 편의점 유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제 어묵바 단 3일간 할인 1000원 → 500원!!! " 사실 저는 혼자 뭔가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혼자 먹는 건 재미가 없거든요. 게다가 편의점의 어묵바는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렴한 가격이 주는 불량 식품의 강한 선입견도 한몫했죠. 하지만 "수제"라는 문구와 자그마치 50% 할인이라는 점, 게다가 3일이라는 미치도록 설레이는 한정감...!!! 문제의 "문어바"를 500원에 구입하고서 집으로 왔죠. 

집에 있던 칠리소스에 따끈한 문어바를 찍어 한 입 베어 무는데, 그 순간 저는 감동했습니다. 미스터 초밥왕 못지 않은 폭풍 리액션이 나올 뻔 했어요. 쫄깃한 문어의 식감과 생선 연육의 조화, 어묵바가 매콤한 칠리소스와 만나 한데 어울어지는 조화!!! 꺄앗!!! 이거야~ 내일부터 출근할 때에 아침밥은 먹지 않고 아침마다 어묵바를 한개씩 먹을까? 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볼 정도였습니다. 만약 앞으로 당신이 어디에선가 30대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이른 아침에 편의점에서 혼자 울면서 문어바를 먹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건 바로 접니다. (흐음....상상해보니 참.... 주접스럽네요)

행복에 가격표가 있을까요? 다 큰 어른이 이 나이에 고작 500원짜리 어묵바를 먹고서 이렇게까지 행복해 해도 되는 건가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명품 가방, 해외여행 같은 값비싼 행복을 찾는 게 더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잖아요. 나날이 사람들의 경제적인 수준은 올라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럭셔리한 방식으로 여가를 즐기고, 고가의 물품을 소비하여 더 값비싼 행복을 *구입*하고 있죠.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날이 더 불행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행복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서를 경험하는 심도보다 빈도가 더 중요하다는 연구(Diener, Sandvik, & Pavot, 1991)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쉽게 풀어 이야기 하자면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얼마나 강한 정서적 자극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1년에 한번씩 사는 사람보다도 500원 짜리 - 1년이면 18만2천5백원에 해당하는 - 문어바를 매일 한 개씩 먹는 사람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행복엔 가격표가 없습니다. 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큰 돈을 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내가 지금 무얼 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500원짜리 문어바를 오늘도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취해 오늘 저는 기쁘게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행복은 참 사소하고도 작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죠. 그리고 이렇게 작은 일에 행복해 할 수 있는 감성을 제게 주신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P.S. 편의점 앞에 도착한 제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드네요. 환상적인 천상의 맛을 선사하는 어묵바 50% 할인행사는요.....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나봐요.... 행복의 빈도? 사소한 행복? 큰 깨달음? 으아아아앙!!!! 이게 다 무슨 헛소리인가요.... 그냥 50% 할인해 주삼! ㅠ.ㅠ

하늘을 날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순간, 누가 느릿느릿 걸어가고만 있겠는가!   -헬렌 켈러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그녀, 헬렌 켈러..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그 지점에서 끝이 나 있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던 한 여성의 삶에 대해서 다루기엔, 제 어린 시절의 반공 교육이 너무 철저했던 것일까요? 어떤 쪽이 되었건, 그녀의 삶은 참 치열했습니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깨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사회적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던 끊임없는 투쟁의 삶이라니...부끄럽게도 오늘의 저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안주하기에도 참 버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헬렌....하나만 여쭤볼께요. 

피로는 어떻게 깨셨나요??!!!! 히잉...전 지금 너무 피곤해요. 이 저주받은 저질 체력!

어떤 것이든 우리가 애정을 기울이다보면, 놀랍게도 그것 스스로가 생명을 지니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처음 이곳의 도메인을 구입한 것은 대학원 강의를 듣다가 일종의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었던 그 해 겨울에 앞으로 녹색산업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작은 불씨로 말미암아 이렇게 작은 둥지를 틀게 된 거죠. ^^

처음엔 글 하나 올리기가 참 쑥쓰럽고, 귀찮은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엔 하루 종일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화분을 키우는 마음으로 물도 주듯이, 햇빛도 쬐여주듯이 관심의 손길을 조금씩이나마 기울였고 간신히 관리를 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순간부터 이 공간이 제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습관처럼 쉽게 받아 들이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쩜 이 공간이 생명을 지니게 되어 제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조금씩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실현시키고 싶어졌습니다. 이 사이트에 누적된 방문자 분들의 숫자가 벌써 만천명이나 되었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응원해 주세요.

선한 의지와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열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노르웨이 극우세력의 테러에 대한 방송을 잠시 보았는데요. 테러 직후의 노르웨이 총리 발언에 닭살이 오도도 돋았습니다. 옌스 총리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렇게 남겼대요. "더 강한 민주주의와 더 큰 관용의 정신으로 보복하겠다"

우리가 타인의 폭력이나 부당한 처사에 대응하는 방식은 대개 두가지로 나뉩니다. *힘으로 맞받아치기* 또는 *비굴하게 적당히 타협하기*
 
맞고도 되받아치지 않으면 바보취급하는 세상이니까 적당히 상대를 탐색해 보고 나보다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매우 강하게 나가구요. 상대가 강해 보이면, 적당히 비굴하게 굽히고 나가는거죠. 내가 만약 당하면 당한대로 되갚아 주어야 남들이 나를 얕잡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살아가요. tit for tat 전략의 생활화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옌스 총리는 더 큰 관용과 민주주의로 보복하겠노라고, 폭력으로 되갚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진짜 한 수 위라는 걸 보여주는 발언 아닙니까? 우리가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 하고, 무언가를 입증하려 하는 것들은 실상 상대에게 굉장히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가령 겁 많은 강아지일수록 더 으르렁거리고 더 크게 짖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폭력으로 폭력에 맞서는 이들을 용기있다고 부르는 것이 맞나요? 테러나 폭력, 전쟁의 부당함에 대해서 주장하는 방식이 폭력이 된다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부당함에는 부당함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잃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죠.

결국 이것은 단지 인생의 불확실성을 대하는 방식이며, 스스로를 얼마나 신뢰하느나의 문제입니다. 타인에게 열린 자세를 취하고 다양성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내적으로 단단해야 합니다. "오란고교 사교클럽"이라는 다소 엉뚱발랄한 만화 속에 보면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진정한 강함이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 들이는 것" 이라고요.

더욱 열린 사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자고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한 토크쇼에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의 어려운 부분이 뭐냐고 묻자 한 외국인이 답하길 "한국어에는 서로 비슷한 단어들이 많은데, 가령 파출부와 파출소는 너무 헷갈려요!" 라고 말하더라구요.

제게도 영어를 처음 공부했을 때, 참 어이없게 비슷해 보이던 단어가 있는데 바로 forgive와 forget입니다. for+give 와 for+get...어찌보면 닮았잖아요. for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단어들인데, 도대체 그 둘의 어떤 점이 닮았냐구요?

give와 get은 둘 다 소유와 관계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무언가를 준다는 것과 그것을 획득한다는 것은 소유권의 문제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get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경쟁하고 싸웁니다.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가 바로 통제권이 되고, 영향력이 되고, 권력이 되니까요. 현대 사회는 소유와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잖아요. 심지어 교회조차도 신앙과 물질적 축복의 관계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내려 놓기 전까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의외로 참 많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행위를 통해 얻는 기쁨을 생각해 보세요. 내 양 손에 모든 걸 움켜 쥐려 하다보면, 정작 소중한 것을 get 할 수 없게 됩니다.

forgive와 forget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누군가를 용서하기 전까지는 망각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혹시 아직도 상대 또는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은 아닐지 잘 생각해 보세요.

결국 give와 get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forgive와 forget이 그러하듯이.

맥주와 함께 정말 맛있는 쉬림프 크림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성신여대 앞 맛집, *늦은 오후*입니다! 정신없이 먹느라 정작 크림 파스타 사진을 찍어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네요.

굉장히 아담한 가게인데다가 골목 안에 숨어 있어서 찾기는 힘들지만, 먹어본 메뉴 모두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샐러드 드레싱도 수준급이었고, 크림 파스타는 제가 먹어본 파스타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각종 드레싱이나 소스 모두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제공한다고 하네요.


햄버거 스테이크도 웬만한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훨씬 더 맛있었어요. 햄버거 스테이크 특유의 느끼함이나 고기 냄새 등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고기도 고르게 잘 익은데다 소스가 고기와 잘 어우러져 있더라구요.  

무엇보다도 크림 파스타와 맥주의 조합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찾은 맛집 가운데 으뜸인데, 다만 한 가지 단점이라면 위치 찾기가 힘들다는 정도랄까요? 성신여대 앞 국민은행 골목으로 쭉 올라가다가 캔모아 맞은편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스맛폰 지도검색으로 찾아가실 때엔 동선동 1가 85-95번지로 입력하시면 되네요.


앗! 정말 맛있는 곳이었는데,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아쉽네요. ㅠ.ㅠ


어느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여 회의실에 들어 갔는데, 그 안에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가 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 없는 거대한 골치덩어리가 회의실 한구석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희안하게도 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그게 없는 양 모르는 척하고서 딴 소리들만 늘어 놓습니다. 위에 있는 재미있는 사진은 Elephant in the room(방 안의 코끼리)의 뜻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Elephant in the room"은 명백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하거나 언급되지 않는 사실들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관용어입니다.

환경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 블로그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고민들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제 마음 속에는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 초록색 괴물은 상당히 거대하고 영향력 있으며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거슬리는 이슈입니다. 한국의 환경 문제에 대해 떠올릴 때면,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우리의 자연을 해치려는 권력자들의 음모에 대해 하나하나 꼬집고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게 된거죠!

하지만 제가 '감히' 이 코끼리 이야기를 거론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문제가 상당히 정치적이기도 하려니와 가치판단과 관련되어 있어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제 자신조차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섣불리 이야기를 꺼냈다가 제 소중한 블로그가 어떤 식으로든 다치게 될까 염려가 되기도 하고요. (에잇! 어쩔 수 없는 소심쟁이!!! 자기검열 만큼이나 무서운 게 세상에 있을까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코끼리 한 마리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제 머리 속을 꽉 채우고야 만 것입니다.  이 코끼리 생각에 매달려 있느라, 매달 최소한 한개의 포스팅이라도 올리자는 다짐조차 깨게 되었죠. 윽! 이 코끼리 녀석, 알고보니 히키코모리였나 봅니다. 제 마음 속의 방 안에 한번 들어가더니 도통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딱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입니다. 초록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자고 다짐하고부터 초록색 코끼리만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가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통제하려 할수록 그것의 영향력은 오히려 강해는 법입니다. 헤어진 애인을 잊기 위해 발버둥치면 칠수록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만 더욱 깊어집니다. 반도막 나버린 펀드의 쓰라린 아픔을 잊으려 노력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가지수를 자꾸 찾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고통과 아픔에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그것은 잠시 억눌린 상태가 될 뿐, 극복되지는 않습니다. 분노의 고삐를 단단히 움켜쥐면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만 커질 뿐입니다. 

결국 분노의 대상에 대해서 이 공간에서 한참 떠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기에, 결국 무엇을 하지 말자는 부정의 방향이 아니라 무엇을 실천하자는 방향의 긍정의 주장이 되어야 겠지요. 무언가를 막고 분노하며 실망하는 데에 쓰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꿔서 무언가 창조적인 것들을 하기 위한 방향으로 돌린다면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요. 현존하는 문제를 후벼파기 보다는 실천적인 환경 사랑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까봐요.

P.S. 쳇. 이렇게 순응적인 착한 결론이라니...어쩌면 저는 코끼리와 싸움에서 결국 패배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훠이~ 콘크리트 코끼리! 고만 썩 물럿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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