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던 여고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는데요. 하루는 하교길에 한 초등학생 꼬맹이와 엄마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의 작은 틈새 사이에서 살포시 피어난 민들레를 보고서 아이가 엄마에게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엄마,엄마! 민들레는 눈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에 흙이 있는 걸 알고서 여기에 살게 되었을까?"

이 귀엽고도 황당한 질문에 엄마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호기심이 생긴 저는 귀를 쫑긋 세우고서 엄마의 대답을 들었죠.

"민들레 꽃씨는 아주 멀리서 흙을 찾아서 여행을 온거야. 그리고 이 작고 부드러운 흙에 닿았을때, 꽃씨는 알게 된거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도 되겠구나. 라고..."

너무 멋진 대답이죠? 시를 한편 듣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답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꽃씨의 여행이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는 과정과 같지 않나요? 아스팔트 틈새의 작은 흙을 만나게 되었을 때, 눈이 없는 민들레 꽃씨도 그곳이 자신의 터전임을 각성하고서 뿌리를 내린다는 것...

아스팔트로 꽉 메워진 도로에서는 이제 민들레 보는 일도 참 드물어졌어요. 옆에 있는 사진은 사진은 독일의 도르트문트 마을의 보도블록입니다. 빗물이 스며들고 푸른 잔디가 블록사이로 자라는 '생태보도블록'이라고 합니다.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면 지하수량이 풍부해지고 더불어 근처의 식물들이 잘 자라게 됩니다. 특히 생태보도블록은 자칫 삭막하기 쉬운 도시문화를 서정적이고 따뜻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겠지요.

들풀과 민들레가 보도블록 사이에 빼곡히 자라나는 모습, 서울의 거리에서도 꼭 보고 싶습니다. 흙과의 조우를 꿈꾸는 민들레 꽃씨의 머나먼 여행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그날을 꿈꾸어 봅니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저와 참 비슷한 성격, 저와 비슷한 정치적 견해, 저와 비슷한 정도의 개방성, 비슷한 문화적 취향 등을 지닌 편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참 안전한 선택을 좋아한다고나 할까요. 이질적인 낌새가 있는 사람이나 조직에게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음을 통해 연결되고, 다름을 통해 성장한다"고 했던가요. 버지니아 사티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너무 homogeneous한 사람들의 집합체는 그닥 좋지 않다는 걸 제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젠 조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심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지요. 이제는 조금 더 성장하고 싶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그동안 나와 세상을 연결지었던 "같음의 범주"를 조금 깨 보기로 결심한 셈입니다. 네!!! 이제는 다름을 통해 성장해보려구요. 변화는 항상 낯설음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부여합니다. 기왕 이렇게 결심했으니, 내 자신을 강하게 믿어보는 수 밖에...^^ 

버지니아 사티어의 시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자아자 화이팅!!

나의 자존감 선언 
 
나는 나다.

이 지구 땅덩어리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부분이 나와 아주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나 혼자서 하기로 선택한 것이므로 진정 나의 것이다.

나는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소유한다.
-내 몸과 몸이 하는 모든 것 :
내 정신과 그 속에 담겨진 모든 생각과 사상들 :
내 눈과 그 눈들이 보는 모든 형상들 :
노여움이나 가쁨, 좌절, 사랑, 실망, 흥분 그 어떤 것이나 내가 느끼는 감정들 :
내 입과 거기서 나오는 공손하거나, 달콤하거나 거칠거나 옳거나 그른 모든 말들 :
그리고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모든 행위들.

나는 나의 환상과 꿈과 희망과 공포심을 갖고 있다.

나는 나의 모든 업적과 성공, 실패와 과오를 갖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소유하기 때문에 나 자신과 친밀하게 사귈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나의 모든 면과 친해질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현할 수 있다.

나 자신에는 나를 궁금하게 하는 면이 있고 있는지도 몰랐던 면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을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한 나는 용기있고 희망차게
나를 궁금하게 하는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고 따라서 나 자신을 좀 더 알아낼 수 있다.

내가 어떻게 보이고 들리든,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든,
또 주어진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든 그 모든 것은 나다.
이러한 사실들로 내가 그 순간 어디있느냐를 보여준다.

나중에 나의 모습과 목소리와 말과 생동과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면 어떤 부분들은 알맞지 않다.
나는 그 알맞지 않은 부분을 버리고 알맞은 것만 간직하며,
버린 부분대신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한다.
나는 생존하고 남과 가깝게 지내고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나의 주인이며 나는 나를 운전할 수 있다.

나는 나이며 나는 괜찮은 존재이다.

학창시절, 프랑스 파리에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기회가 된다면 술 한병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았었죠. 부탁받은 술의 이름은 압생뜨(Absinthe)! 독한 이 술은 천재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천재시인 랭보부터 인상주의 화가 고흐까지 즐겨 마셨다고 그분은 설명해 주셨어요. 오오...뭐랄까. 정말 매력적인 술일 것만 같았고, 꼭 마시고 싶어졌었답니다. 왕성한 지적 (또는 주적ㅋㅋ) 호기심에 불을 붙여 주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사실 파리 생활에 적응하느라 당분간 그런 술의 이름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올라 하숙집의 프랑스인 아저씨에게 물었죠. "술 같은 걸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압생뜨라는 술을 사고 싶은데.." 이 말을 들은 그 아저씨의 표정은 가히 가관이었습니다. 눈이 동그래진 그는 내게 반문했죠."압생뜨라고?"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내게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그 술은 판매가 금지된 술이야. 많이 마시다 보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혹시나 이 어리버리한 동양 여자애가 제대로 못 알아들었을까봐 염려가 되었는지 fou-미친다-는 말을 서너번은 반복한 것 같습니다.

뒤늦게 이 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더 끔찍했습니다. 


고흐가 진술하는 증상들과 압생트에 관한 많은 의학 정보를 감안하면 그의 발작에 압생트(absinthe)가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압생트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파리 몽마르트르 아베스가에 있는 바타이유 카페에서이었는데 당시 꼬르몽 아틀리에에서 만난 톨투르 로트렉이 그를 술마시러 데리고 다니곤 했다고 한다.

1887년 봄에 고흐가 파리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그린 자화상과 그가 압생트를 많이 마시게된 겨울에 그린, 즉 압생트를 많이 마신 다음 날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자화상을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그의 눈 주위의 부종과 눈의 충혈이 다음 날까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마신 것을 숨김없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아를에 와서는 기후 탓에서인지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금주는 오래 가지 못하고 노란 집을 수리하는 동안 지누 카페에서 지내면서 ‘밤의 카페’를 그렸다. 이 그림을 본 안과 의사 마모(M.F. Marmor 1997)와 라빈(J.G. Ravin 1997)은 그림의 전등(電燈) 주위의 운륜(暈輪 haloes)과 이상한 노란 빛깔은 그가 황시증(黃視症 xanthopia)에 걸려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메일 률랭과 압생트를 마시다가 후에 고갱이 온 다음에는 그와 같이 마셨다. 특히 귀자르기 사건이 있기 전에 많이 마셨다.

아를 시립병원에 입원 당시 레이 의사가 반 고흐의 과도한 음주를 나무라자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 ........ 올 여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로서는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

이것은 하나의 고백이다. 그는 아를에서 찬란한 노란 색을 얻기 위해 여름 내내 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를에서 그린 ‘해바라기’ 그림과 집의 빛깔에 노란색을 그것도 불타는 듯한 노란색을 많이 썼다. 그가 노란색을 얻기 위해 압생트를 마셨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소리이다. 압생트라는 술은 색맹이라는 색채의 이상을 초래하는데 황시증도 그 부작용의 하나이다. 즉 약쑥을 증류해 만든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레벤(terebene, 송진에 포함되어 있는 방향성 액체) 유도체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이 술을 많이 마셔 중독되면 시각 장애를 일으킨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의 그림에 사용한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기기묘묘한 노랑-파랑 조의 색깔을 얻기 위해 고심한 나머지 압생트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아를의 노란 집’, ‘해바라기’, ‘밤의 카페’ 그리고 ‘수확하는 사람’ 등의 명화이다.

반 고흐도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술 마시고 난 다음날의 자화상을 숨김없이 그렸다. 그렇지만 그는 평소에 알코올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보였다. 즉 알코올이 ‘내 광기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때로는 이를 부정하고 ‘..... 그러므로 알코올 역시 이유가 될 수 없다. 물론 알코올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나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몇몇 사람들이 알코올에 대해서 갖고 있는 옳지 못한 인식은 마치 미신과 같은 것이다.’라고 방어 태세를 취하기도 했다.

생 레미 요양원에 입원 중에는 술을 마실 수 없었지만 외출이 허용됨에 따라 감시원이 그를 따라 다녔는데 감시원은 술집에서 함께 술 한잔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외출은 주로 생 레미에서 아를로 가곤 했는데 그중 네 차례는 발작으로 이어졌다.

1889년 7월 발작이 시작되어 8월까지 지속되고. 그 해 12월과 1890년 1월에 짧은 발작이 일어났으며 1890년 2월의 발작은 가장 길고 심각해 4월까지 지속되었다. 이것은 그가 2월 22일에 아를로 지누 부인에게 자기가 그린 ‘아를 여인’을 전해주기 위해 외출하였는데 그날 저녁에 돌아오지 않아 빼롱 박사는 차와 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형님이 요양원 밖으로 외출하였다가 돌아 온 다음에는 발작이 일어나고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행동할 때는 언제나 과도한 흥분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외출과 발작은 반 고흐와 의사 사이에 묵인과 위장이라는 괴상한 관계를 만들어 내다가 그 도가 지나치자 의사는 이를 테오에게 통보하였던 것이다.

사실 술꾼이 술을 끊기란 마약을 끊기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생 레미에 있을 때 반 고흐는 도비에의 그림 ‘술꾼들’을 본뜬 그림을 그리면서 음주 충동을 달랬던 것 같다.

무경련성 ‘착란 (錯亂)’ 상태의 압생트 중독자는 내면적인 지표를 잃고 괴상한 행동과 조리에 닿지 않는 말을 하며 멍한 상태로 고통받는다. 압생트 중독 때 중독의 한 증상으로 청각적인 환각 즉 환청(비난의 목소리와 감금하겠다는 협박)과 시각적인 착각 즉 착시(화재, 해골, 무서운 유령, 끔직한 짐승) 현상이 나타난다. 또 발작 중에 떠오르는 사람들도 마치 먼 곳에서 온 사람 같아 그들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데 반 고흐도 이런 것을 경험하였다고 했다. 또 압생트 중독자는 성격이 혼란해진다. 성마름, 흥분, 권위적 태도, 분노 등이 나타나 그 성격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아를에서 2개월간 같이 공동생활을 한 고갱의 회상록에 잘 나타나 있다.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작업실이 너무나 더럽다는 것과 .... 비탄의 저변에 놓여 있는 이성이 실타래처럼 뒤얽힌 그의 사고로부터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나는 그의 그림과 말이 빚어내는 모순을 도저히 해명할 길이 없었다.’ 라고.

글 : 문국진 ( 고대의대 명예교수 )


압생트는 아니스(Anis)씨와 감초 그리고 쑥의 수종의 약초와 향료를 원료로 배합하여 만든 리큐르로써, 일명 ‘녹색의 마주’라고 합니다. 물을 가하면 오팔 모양이 되고 태양광선을 쏘이면 일곱가지 색으로 빛나며, 물이든 글라스에 뻬르노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물이 차츰 유백색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감초 비슷한 맛과 오팔색을 띄고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는 너무 독하기 때문에 보통 약 4~ 5배의 물을 타서 마신다고 합니다. 알콜도수가 높은 편이고 단맛나는 압생트는 45℃, 단맛이 없는 압생트는 68℃까지 간다고 하니 어마어마 하지요...?

또한 향쑥 특유의 맛이 있어 각설탕과 녹여서 먹는데 압셍트 전용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스푼위에 설탕을 놓고 불로 녹인 다음 먹는다고 해요.  오른쪽 기구가 '압셍트의 샘'이라 불리우는 압셍트 희석용 도구 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하숙집 아저씨의 표정이며 상황이 너무 재미있지만, 그땐 참 어이없고 억울했습니다 . 어리버리+순진무구한 동양인 여자아이가 중독성 강한 술을 사고싶다고 말했으니 그 아저씨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시죠? "어마낫. 너 그런 애였니? 울랄라" 뭐 이런 표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압생트가 최근에는 환각이나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실제로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다는 거죠! 이제라도 이 억울함을 풀고 싶은데, 그 하숙집 아저씨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요? 아님 편지라도 쓸까요? 에휴. 벌써 10년도 지난 일인데, 다 필요없고 그냥 그 술을 한잔 마셔보고 싶습니다. 내 젊은 날의 초록요정을 만나는 기분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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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동료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다이어트 비법'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8kg을 뺀 그녀의 성공담에 따르면 첫달에는 쉽게 빠지던 몸무게가 두번째 달, 세번째 달에 접어드니 쉽사리 빠지지 않고 아무리 죽어라 운동하고 식사를 조절해도 열흘동안 체중계 바늘이 꼼짝을 안하더랍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들은 누구나 하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단박에 늘지 않는 영어실력, 잘해보려 애써도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인간관계, 매일 그 자리인 연봉, 기타 등등!! "이런 노력이 쌓여가면 분명히 변화할거야" 라든가 "이 코너만 돌면 행복이 나를 기다릴거야" 같은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름대로 용을 쓰고서 그 다음날 '인생의 저울'위에 올라서서 현재의 무게를 재보지만, 바늘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임계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의미겠지요. 어지간한 에너지가 모이지 않고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인생의 임계점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이어트 때 살이 빠지는 주기는 열흘이라고 하지만, 인생의 변화 주기는 당최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싸늘한 비관주의? 무작정 희망갖기? 시크릿의 원리를 이용한 유인력? 막연히 다 잘 될거라는 희망이 우리를 과연 구원해줄 수 있을까요?

베트남에 참전했던 스톡데일 장군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베트남군에게 포로로 잡히고서 주위의 많은 미군들은 고통스러운 포로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해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없던 동료들이 포로 생활을 견디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겠죠.  그런데 특이한 점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던 동료들 역시 살아남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거야",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나갈 수 있을거야" 이런 기대들을 막연히 품고서, 그 바람이 한번씩 좌절될 때마다 그들은 더욱 절망했고 결국 삶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름하여 "스톡데일 패러독스"입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품되, 현실을 냉철히 직시해야만 이 전쟁같이 험난한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얼마 전 저는 5년 전에 극복하고자 했던 내면의 벽과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그 벽으로부터 도망치기 급급했으나, 이젠 현실을 직시하니 오히려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다 잘될거라는 막연한 기대 따위는 하지 않으려니와 스스로를 원망하나 슬퍼하지도 않을 작정입니다...당장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이 고통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요.

저는 지금 혼자만의 임계점을 넘고 있어요. 물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는 못할테지만 조금은 내적으로 성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결론은 간단합니다. 내 인생의 바늘이 꼼짝하지 않을지라도, 결단코 여기서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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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생 처음으로 [피정]에 가본 것은 올해 초여름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조금은 불편한 사정이 있긴 했지만, 우연치 않게 알게 된 기회였기에 제멋대로 "이건 분명 하느님의 부르심이야"라고 단정하고서 가게 된 것이었지요. 대학원 수업에 직장생활까지 병행하는 터라 피정을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도 굉장한 도전이었고, 게다가 워낙 불편한 자리를 못 참는 성격인데 그런 복잡한 상황을 참는다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가기로 결심!

 이틀간의 침묵피정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온전히 피정의 기쁨을 즐기지 못했답니다. 이상하게 별 것 아닌 일들이 머릿속에 못 박혀서 "하느님과 저의 관계"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거에요. 그러다보니 애초에 피정을 가겠다고 나선 내 자신이 미웠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나를 집어삼켰고, 그런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다시 미워졌고, 눈물만 자꾸 걷잡을 수 없게 흐르고 또 흐르고...

 영화에서 보면 가녀린 여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은 구슬처럼 또르륵 흐르던데, 저는 항상 눈물과 함께 엄청난 콧물이 주책없이 함께 나오거든요. 눈물보다 코 풀기에 정신없어 훌쩍거리며 울다보면,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으잉! 난 여주인공 팔자는 아닌가봐 ㅠ,ㅠ)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로 이틀을 보내자, "아니, 하느님!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거예욧!!??"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더라구요. 

 그렇게 이틀을 끝마치게 될 때 즈음, 고해성사의 시간이 있다고 누군가 말하는데 하느님께 단단히 삐진 저는 고해성사고 뭐고 집어치우고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해성사의 시간이 거의 끝나 가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픈 겁니다! 방출 욕구를 해결하고 오는 길에서 고해성사를 하라는 진짜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해성사가 시작되자마자, 신부님 앞에서 다시 엉엉 울어버렸답니다. 이번에도 눈물은 줄줄, 콧물은 펑펑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 않더군요. "신부님...흑흑..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왜 저는 그게 안 될까요. 그게 안되는 제 자신이 너무 밉고 한심하고..엉엉...훌쩍훌쩍"

 한참을 듣고 계시던 신부님이 정말 따뜻하게 해주신 말씀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아닌 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요. 사제인 저 역시도 그렇거든요. 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해서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시는 분이니까요."

 아...! 결국 문제는 제 오만함이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교양 있는 척, 쿨한 척,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 행동할 수는 있어도, 한 분만은 속일 수 없었던 거죠. 주님은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나의 부족함까지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고 저를 이틀동안 질질 짜고 있게 만드셨나봐요.

 아직도 가끔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조금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주님이 도와주셨고, 함께해준 요세피나 덕택에 성장통을 잘 이겨냈답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뻔하디 뻔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저는 전보다 조금은 자라났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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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니, 양측이 협력하면 가장 좋은 방법이 나올 수 있지만 양쪽의 어리석은 불신과 배신으로 인해 둘 다 불행해지는 경우들을 자주 보게 된다. 소위 "죄수의 딜레마" 라고 부르는 상황들이 왕왕 생기는 셈이다.

두 명의 죄수 A, B 가 각각 독방에 갇혀 있다. 그리고 검사가 각 죄수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한다. 죄수 A 입장에서는 침묵 즉, B와 협력을 택하면 B가 같이 협력을 선택 했을 때는 6개월 복역하지만 만약 죄수 B가 배신을 하는 경우에는 졸지에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만약 배신을 택했다면 죄수 B가 협력을 선택한 경우 자신은 석방되고 비록 배신을 하는 경우에도 2년 복역으로 끝난다.
 
이것이 다들 알고 있는 게임 이론인 "죄수의 딜레마"이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다양하고 복잡한 전략들을 시뮬레이션 해보았지만, 결과는 Tit-For-Tat 이라는 단순한 전략이 승리를 했다고 한다.
 
Tit-For-Tat이란 사전적 의미로 "맞 받아 치기"이다. 요즘 이 말이 경영관리 및 비지니스 이론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 "Tit-For-Tat 전략"이란 "반드시 보복하기 전략"을 말한다. Tit-For-Tat은 “처음에는 협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그전에 행동한 대로 따라서 한다”는 두 개의 규칙으로 구성된다. Tit-For-Tat은 인정 많음(먼저 배반자가 되지 않음), 분개(상대방이 배반하면 따라서 배반함으로써 즉시 응징함), 관대(상대방이 배반한 적이 있더라도 다시 협력하면 따라 협력함으로써 협조 분위기를 복원시킴)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회유와 위협) 정책의 요체를 합쳐 놓은 전략이다.
 
Tit-For-Tat 전략이란 다음 4가지 행동양식을 기본무기로 한다. 이것은 동물의 행동양식을 관찰한 결과로 얻어낸 게임이론이다.
 
1. 신사적일 것. 내가 먼저 상대편을 속이거나 배반하지 않고, 최초에 설정했던 게임정신이나 둘 사이의 관계규정을 먼저 파기하지 않는다.
 
2. 반드시 보복할 것. 상대가 반칙을 범했을 때에는 반드시 즉시 보복할 것이다.
 
3. 용서할 것. 규칙을 어긴 상대가 반성을 하고 정상으로 되돌아오면 용서를 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를 할 때에는 보복을 할 때와는 달리 약간 뜸을 들이면서 용서를 한다. TFT는 성급한 용서를 배제한다.
 
4. 행동을 명백히 할 것. 사실 이 전략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상대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이 전략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이 전략의 목적이다.

사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위의 Tit-For-Tat 전략은 너무나 단순하게 느껴질 것이다. 야생의 동물들은 이 전략을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신뢰하되, 한쪽이 배신하면 반드시 응징하고, 상대가 반성하면 용서해 준다는 이 간단한 논리를 말이다. 동물들은 자신의 배신자를 그토록 엄중하게 응징하며 실컷 두들겨 패고 물고 뜯고 죽일듯 덤비다가도, 상대가 꼬리를 내리고 배를 드러내면 얼마 후엔 용서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때 내 뒤통수를 날렸던 그 나쁜 놈을 따꼼(!)하게 혼내주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만약 그 쥑일 놈이 '정말 미안해' 라고 빌면 그땐 용서해 주라니...여기부터가 쉽지 않다. 그놈이 내 마음에 준 상처는 어떻게 할까? 그놈이 또다시 나를 배반하면 어쩌지? 옛말에 개버릇 남 못준다고 하던데?!!!!!!!!!

이래서 용서가 힘들다. 나를 보호하고 싶은 강한 욕구들이 나를 뒤덮기 때문이다. 이럴 때엔 상대에 대한 신뢰만 필요한게 아니라, 내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내 스스로가 누군가로 인해 휘둘리지 않는 존재라는 것. 내 존재 가치에 대한 믿음 말이다. 나는 충분히 강하다는 믿음. 다시 그놈이 배신한다면 그땐 더욱 강하게 응징해 주면 된다는 배짱. 무엇보다 나의 가치는 남에게 받는 사랑이나 존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나온다는 신뢰.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신림의 인기 맛집.  늦게가면 자리 잡기 힘들당.

쐬주가 땡기는 날,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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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꺄옷. 내가 꿈꾸던 집처럼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이 되길...^____^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으로 그려오던 집이 있었다. 아름다운 공간이나 예쁜 집을 보면, 미래의 내 집 도면을 조금씩 바꾸어 이제는 상당히 구체적인 그림이 되었다.

그 집엔 한국 전통가옥 특유의 아담한 뒤뜰이 있다. 파릇파릇한 잎새들 사이로 작은 장독대 서너개가 보이고, 영글은 포도나무가 심겨있는 뜰… 맘씨 좋은 친구들을 불러 다같이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나즈막한 돌의자 너댓 개가 정원 한켠에 동그랗게 놓여있을 것이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부레옥잠이 잠긴 물확 속에 고이고, 철마다 작은 꽃들이 피는 아늑한 공간... 작은 텃밭에는 유기농 야채들 자라고, 가끔은 쉴 곳을 찾아 작은 새들이 놀러올 것이다.

그리고 지하에는 작은 와인창고를 만들어야겠다. 뒤뜰에서 자란 포도로 내가 직접 담근 와인도 이 Cave에서 익어가고, 여행하면서 모은 각국의 좋은 와인들도 보관할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끔 오붓한 시간을 가질테고, 내가 죽으면 내 친구와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서 내가 모아 두었던 좋은 와인을 마시며 옛날을 추억하고 웃고 떠들 수 있겠다.

햇빛이 드는 아늑한 서재도 만들고 싶다. 맘껏 책을 읽고 사색도 하고, 오래된 책들이 풍기는 냄새도 맡으며, 여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서재 한 귀퉁이에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지. 풋..^^

지붕에는 태양열전지판을 설치하고, 거실엔 벽난로도 만들어야겠다. 자연이 주는 것들을 모두 깨끗하게 아껴서 사용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맑은 공기를 맡으며 행복한 지구에서 살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보태고 싶다. 화려하게 소비하기 보다는, 단아하게 내면을 가꿔나가는 집. 그 집은 분명히 튼튼하고 아늑한 집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 집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 나른한 오후에는 다정한 반려자와 함께 오수를 즐기며, 조금씩 나이듦의 여유를 만끽하겠지. 어딘가에서 그 집이, 그 사람이, 그런 일상이 손짓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행복아. 기다려, 곧 갈께. 빙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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