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 인생은 처음에 계획한 것과는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곤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라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열대어를 키우고 싶어서 어항에 물도 넣고 수초도 심으며 준비하던 저는 이끼 제거 차원에서 새우 몇 마리를 어항에 넣었고 어쩌다보니 그곳이 새우항이 되어 현재 CBS (Crystal Black Shrimp)와 체리새우를 열심히 키우고 있지요.

새우들을 키우다 보니, 보면 볼수록 참 귀엽고, 새우들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됩니다. 새우들이 바닥을 열심히 뒤적거리며 뭔가 냠냠 주워 먹는 모습도 귀엽고, 방란하여 아기새우들이 돌아 다니는 것도 신기하고, 또 가끔은 물고기처럼 수초 사이를 폴폴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예쁩니다. 가끔은 새우를 귀여워하는 제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에니매이션 심슨가족에서 호머가 바닷가재를 애완용으로 애지중지 키우던 에피소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해요. 참고로 그 에피소드 결말은 다소 황당한데... 호머 심슨은 따뜻한 물에 바닷가재 Pinchy (네이밍 센스 짱!)를 목욕시키려다 실수로 뜨끈하게 익혀서 죽이고, 호머 심슨은 Pinchy의 죽음을 슬퍼하며 냠냠 먹습니다...읭?! -_-

여튼 평화롭던 저희집 새우항에 언제부턴가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게 됩니다. 어항에 이상한 생물들 -작고 하얀 점과 가늘고 흰 선-이 나타나 꼬물거리기 시작했던 것이죠 -_- 너무 작아서 이게 뭔가 했는데 그 흰 점의 이름은 코페포타였고, 흰 선의 이름은 미즈지렁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생태적으로 새우가 살기 적합한 어항에서 나타나는 착한 생물들이었지만 외관상 제 마음에 드는 애들은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열대어들이 사는 어항에서는 쉽게 잡아 먹히는 편이지만, 새우들은 얘들을 잡아 먹지 못하더군요. 이때 제 마음 속엔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새우를 잡아 먹지 못할 정도로 작은 열대어라면, 코페포타와 미즈 지렁이를 잡아 먹으며 새우와 함께 공생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지요.

새우는 열대어와 함께 키울 수 없다?

새우와 열대어 합사에 관한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새우와 함께 키울 수 있는 열대어를 알려 달라는 질문을 새우 관련 동호회에 올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새우는 열대어와 함께 키울 수 없다! 정 함께 키우겠다면 새우 번식은 포기해야 한다! 열대어와 합사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참 다양했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죠.

생태 피라미드의 약자: 새우는 사람들 입맛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 입맛에도 참 맛있나 봅니다. 하긴 물고기 입장에서 새우는 먹기도 편하고, 맛도 좋고, 키토산과 칼슘, 타우린도 섭취할 수 있으니 일석 삼조의 영양식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던 생태학적 피라미드를 떠올려 보더라도 쉽게 이해되실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도 새우는 생태 피라미드의 하위에 속해 있으며, 육식을 하는 어류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훌륭한 영양원입니다. 게다가 수조에 있는 열대어들은 만날 맛없는 가공 건조사료만 먹는데, 그 애들 눈 앞에 먹음직스러운 생새우가 왔다 갔다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퍽퍽한 통조림만 매일 먹던 호랑이 앞에 통통한 생닭을 두는 셈인거죠.

눈에 띄는 색상: 새우전문가 Ryan Wood에 따르면, 새우는 자연 상태에서는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합니다. 이때 새우의 보호색은 새우를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게끔 도와주기 때문에 위험을 줄여주는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관상용 새우들은 눈에 아주 잘 띄는 색상으로 교배를 통해 인위적으로 브리딩 된 것입니다. 야생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빨갛고 파랗고 새하얀 새우들은 자신의 보호색이 없는 셈이며, 이 때문에 육식성 어류와 함께 관상용 새우를 키울 경우 수조에서의 새우 생존 확률이 급격히 낮아 집니다. 육식성 어류의 눈에 이런 현란한 색상의 관상용 새우들은 네온램프를 달고 있는 것만큼이나 잘 보이니까요.

탈피를 통한 성장: 새우와 같은 절지동물은 탈피 과정을 통해 외골격을 벗은 다음 성장해 갑니다. 새우의 탈피 주기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수조의 수질이나 영양상태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새우를 키우다보면 허연 새우 껍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새우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새우들은 탈피를 할 때에 표면이 극도로 민감해진 상태가 되어 이때 잘못 건드리면 죽기도 하는데, 호기심 많은 열대어가 이때 새우를 톡톡 건드리면 소중한 새우가 어떻게 될까요? 속설에는 새우가 탈피할 때에는 물고기들의 후각에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도 합니다. 이때 물고기 입이 새우를 꿀꺽 삼킬만큼 크지 않더라도 새우를 톡톡 건드려서 죽게끔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치새우들의 크기: 일반적인 관상용 민물새우들의 크기는 다 자라도 2.5cm 정도입니다. 야마토 새우와 같이 5~7cm까지 크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새우들은 상당히 작습니다. 번식을 하게 되어 아기 새우들이 갓 태어나면 그 크기는 우리 눈으로 잘 안보일 정도지요. 아기 새우들은 치새우(稚새우), 치비(ちび: 꼬마를 뜻하는 일본어) 또는 치하(稚蝦)라고도 부르는데 갓 태어났을 때엔 깨알보다 훨씬 작은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치새우들은 아무리 작은 물고기들도 잡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습니다. 치새우는 열대어들이 간식 정도로 뚝딱 해치울 수 있겠지요.

높은 가격: 저는 지금 체리새우와 CBS를 키우고 있는데, 제가 키우는 두가지 종류 이외에도 관상용으로 품종이 개량된 새우들은 참 다양합니다. 생이과의 스노우볼, 블루펄, 오렌지새우부터 크리스탈새우에 속하는 CRS (Crystal Red Shrimp), 골든아이, 팬더, 킹콩 등등....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의 새우들이 다 있습니다. 그 등급에 따라서는 한마리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새우들도 있어서, 혹여라도 물고기와 합사시켰다간 초호화 물고기 밥이 되는 셈이니 그 후덜덜한 가격의 새우를 누가 감히 열대어와 합사시키겠어요? ^^;;;

무엇보다 애정!: 물론 제가 지금 키우는 새우들은 고가의 새우는 아니지만, 가격을 떠나서 제 애정을 들여 키우는 새우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처음 체리새우를 구입했을 때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새우였을지 몰라도 제 눈엔 한마리 한마리가 모두 소중하고 특별했습니다. 더 빨갛고 좋은 혈통의 후대를 굳이 갖지 않더라도 두번 다시 선별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로 말입니다. (해당 포스팅 바로가기)

새우와 열대어를 함께 키우기 위한 조건

위에 설명한 이유들이 새우와 열대어의 합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소중한 새우들을 키우면서 그 애들이 물고기 밥이 될까봐 안절부절 할 수는 없으니 대부분 새우 브리더들은 새우만 단독으로 키우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대어를 새우와 함께 키우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래에 설명드리는 내용은 위의 위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새우와 열대어의 합사를 감행하려는 분들께 알려 드리는 내용입니다.  

새우와 키우는 게 가능한 어종은 아주 드물긴 해도 있긴 있습니다. 위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여,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열대어의 특성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해조류 등 식물성 먹이를 먹는 어종일 것 ② 호기심이 많지 않고 공격적 성향이 적을 것 ③ 가급적 입이 작고 성어의 크기가 작을 것 ④ 약산성(PH 6.0~6.5)의 따뜻한 물(24~26도)에서 사는 어종일 것 등입니다. 합사하는 열대어의 어종 이외에 어항의 조건도 맞아야 하는데, ①모스나 수초가 어항에 무성해서 어린 새우들이 숨을 만한 공간이 많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며 ② 새우와 열대어가 모두 살 수 있는 온도와 PH가 필요하고 ③ 충분한 여과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새우와 합사 가능한 열대어 목록

Ryan Wood는 그의 글에서 채식성 어류와 새우의 합사는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위험도에 따라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열대어 종류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1. 100% confident to list as shrimp safe (새우와 합사해도 안전함)

  • Ottos  (오토싱)

  2. Potentially harmful (잠재적 위험가능성 있음)

  • Plecos (플레코)
  • Tetras (테트라): 카디널 테트라, 네온 테트라 등
  • Guppies (구피)
  • Endlers (엔들러): 엔들러 타이거 등
  • Rasboras (라스보라): 라스보라 헤테로몰파, 라스보라 브리짓데 등
  • Cory's (코리)
  • Danios (다니오)

  3. Do not house (새우합사 금지)

  • Cichlids (시클리드)
  • Discus (디스커스)
  • Angels (엔젤)
  • Gouramis (구라미)

  4. any other fish not mentioned could be harmful (상기어류 이외에는 합사시 위험할 수 있음)

합사시 주의사항!!

재차 강조하지만, 모든 어류는 -심지어는 위에 안전하다고 언급된 오토싱 조차도- 새우에게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토싱은 육식성이 아니며 채식성 어류라고는 하지만, 오토싱이 이끼를 츕츕 열심히 먹는 바로 그때에 치새우가 이끼 위에 있다가 '실수로' 오토싱 입안으로 쏙 빨려 들어갈 수도 있고, 오토싱이 호기심에 새우를 톡톡 건드렸다가 탈피 중인 새우를 죽게 할 수 있지요. 100% 안전하게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어류는 없다는 것은 거~ 꼭 명심해 주세요.

그리고 어항에 수초나 모스가 무성해야 치새우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꼭 기억해 주세요. 어항의 충분한 여과력은 당연한 필수 조건입니다. 어항의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야 소중한 새우도 살리고, 예쁜 열대어들도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으니까요~

참고로 저는 위에 리스트에는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드핀 라이스피쉬라는 소형 어종을 새우들과 합사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는 성체 크기가 2cm 미만인 아주 작은 송사리과의 물고기인데, 파란 레이져를 슝슝 발사하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이 매력적인 아이들입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새우들과 합사 시킨지 두달 정도 되었는데, 아직 죽은 새우는 없었습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클릭!)

자료출처: http://www.planetinverts.com/safe_tankmates_for_shrimp.html

http://www.shrimpkeeping.com/

어느덧 새우를 키운 지 벌써 한달 넘게 되었네요. 새우를 집에서 키운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건 뭥미-_-?"의 반응들을 보이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김장 담그거나 라면 끓일 때 넣으려고 키우는 것이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아니.어떻게 알았지?)

제가 키우는 새우들은 식용은 아니고 체리새우라는 1~2cm 정도의 작은 관상용 새우인데 고추장처럼 빨간 색깔이 매력인 아이들입니다. 보통 우리가 보통 아는 새우는 회색이잖아요. 여하튼 10마리의 체리새우들이 처음엔 그냥 다 빨갛게만 보였는데 열심히 들여다보니 그 미묘한 발색의 차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군요. 체리새우 가운데 생이새우처럼 색이 흐린 녀석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회색 새우들과 체리새우가 서로 교잡이 되면 후대에는 색이 흐려 지기도 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희한한 것은 이걸 알게된 이후부터 10 마리 중에 딱 한마리가 자꾸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빨간 반면에, 딱 한 녀석은 전혀 빨갛다고는 볼 수 없는 그냥 새우젓에 들어가는 새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회색빛 새우더란 말입니다. 저 새우 한마리 때문에 나의 소중한 새우항이 회색 새우 천지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조금씩 생겨나더군요. 그 녀석을 분리시켜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공간을 나눠 두었더니 미안하게도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을 그리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컸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이제 정말 빨간 체리새우들만 남았다는 안도감 또한 생기더군요.

그런데 너무 기괴한 일이 그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그 회색 새우 한 마리가 별이 되었으니, 정말 예쁜 9마리의 빨간 체리새우만 남게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수조 안에 거무튀튀한 새우 한 마리가 갑자기 제 눈에 띄더란 말입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봐도 그 새우가 '안녕? 나 원래부터 여기 있었는데?' 이러면서 저를 빤히 쳐다보더라는 거죠! (물론 그 새우가 말은 안했어요 -_- 새우가 말을 하면 그따위 색깔이 문젭니까!?) 제가 은연중에 새우 열 마리를 색깔 순서대로 1등부터 10등까지 열 세워놓고 있었는데, 10등 하던 꼴찌가 떠나가고 나니 9등이 꼴찌가 되어 또다른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잭 웰치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잭 할아버지가 GE에 도입하여 사용하던 인사시스템인 활력곡선 (vitality curve)을 저는 우연히 새우항에 도입한 셈이었으니까요. 잭 웰치는 활력곡선을 이용해 조직 구성원을 평가 등급에 따라 상위 20%는 핵심 정예, 70%는 중간, 10%는 하위층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핵심 정예층은 특별 대우를 받으며 리더로 양성되고 중간층은 지속적인 교육, 훈련을 통해 핵심 정예가 될 수 있도록 육성하고 하위 10%는 퇴출 대상이 되지요. 하위 10% 퇴출은 곧 열 마리의 새우들 중 회색새우 한 마리 골라내기와 같은 '적자생존'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하위 10%를 골라내고 골라내다보면, 정말 우성인자들만 남아 끝내주게 잘나가는 조직(또는 어항)이 되나요?

불행히도 새우항의 예에서 보여지듯, 조직 내에서 활력곡선의 도입은 정말 위험할 수 있는 발상입니다. 하위 직원을 내보내면 1~9등만 남게 되니 일 잘하는 사람만 남게 되고, 회사에서 퇴출 당하지 않기 위해 모두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는 활력 넘치는 조직이 될 거라는 환상을 가질테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10등 새우가 떠나가면 9등 새우는 저절로 하위 10%가 됩니다. 회색 새우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9마리의 빨간 새우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립니다. 나를 언제 쫓아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가 협동하기 보다는 하위 10%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밟기에 급급합니다. 회사에 위기가 생기면, 회사라는 거대한 배를 구하기 위해 모두 함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다른 배에 승선하기 위해 서둘러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합니다.

물론 건전한 조직을 위해 적절한 수준의 turnover는 필요할테지요. 하지만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의 '활력곡선'은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0등이라 할지라도, 조직 내에서 그가 하는 역할이 분명 존재합니다. 또한 지금은 10등 일지라도 그에게 관심과 기회를 준다면 핵심 정예가 될지 모릅니다. 더불어 조직의 문화가 건전한 방향으로 가면, 건전한 수준의 순환이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봐요. 잭~ 당신은 새우를 키워봤어야 했어요. 

P.S. 갈색 줄무늬의 새우들도 몇일 전에 제 수조로 이사 왔어요. 꺄앗. 너무 예쁩니다. 굳이 경영학적인 화법로 이야기하자면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랄까요. 아항항항~어때요, 잭? 부러우시면 지는 겁니다. 

열대어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폭 23cm의 한뼘 크기 어항을 인터넷으로 구입했습니다. 물고기는 매장에서 직접 구입하려고, 물고기를 뺀 나머지 물품들을 온라인으로 샀죠. 생명을 책임지고 키우는 일이니 무작정 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네이버 검색을 통해 관련된 포스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작은 초소형 어항이더라도 여과기도 필요하다고 하고 이것 저것 준비할 게 많더라구요.

글로 배운대로 걸이식 여과기도 설치하고 수초도 심고 물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잡는다는 건 물고기를 넣기 전에 어항에 물을 담아서 수도물의 화학적인 성분들이 분해될 수 있게끔 시간도 주고, 안정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주일쯤 지나고 나니, 탁했던 물이 맑아지기에 이젠 열대어를 사서 넣어도 되겠다는 마음에 신림동에 있는 꽤 큰 열대어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마음으로 점찍어 두었던 열대어들을 이것 저것 구경하고서 귀염 돋는(!) 노오란 라미네지 두 마리를 구입하기로 결정!

예쁜 물고기도 골랐으니 신나는 마음으로 결제를 하려는데, 점원 분이 어항에 물 잡을 때 여과 박테리아는 넣었냐고 갑자기 제게 물어 보시는 겁니다. 저는 수질 안정제만 넣었는데, 박테리아제 역시도 꼭 넣어줘야 한다고 하시면서 물고기는 사지 말고 우선 여과 박테리아를 넣어주고 일주일쯤 후에 오라고 하시더군요. -_-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물을 잡겠다고 일주일도 넘게 기다렸는데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라니! 꼭 그걸 넣어야 하는 거냐고 재차 묻자 그걸 넣어줘야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산다고, 여과 박테리아들이 있어야 물이 맑게 유지되는 거라고 설명해 주시네요. 장사하는 분이니 편하게 물고기와 함께 박테리아제든 뭐든 한꺼번에 팔면 그만일텐데, 굳이 물고기는 다음에 사라고 말리시니 물고기 구입은 후일을 기약하며 그냥 돌아 왔지요.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수초 어항은 참 심심했습니다. ㅠ_ㅠ 그래도 참고 참고 참아 일주일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그쯤 흐르자 어항엔 조금씩 이끼들이 생겨나더군요..또다시 네이버 지식검색!!! 이끼 제거엔 새우가 최고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체리새우를 구입했습니다. 

새우를 어항에 넣기 전에 '물맞댐'을 해서 1시간에 걸쳐 수온도 맞춰 주고, PH도 맞춰주고서 한마리씩 조심스럽게 입수시켰지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생물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어항의 물을 새우가 담긴 봉지 속 물과 조금씩 섞어 주어서 새로운 환경에 점진적으로 적응시키는 과정을 '물맞댐'이라고 합니다) 사실 물맞댐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걱정이 되었는데 물맞댐 후에 어항으로 입수해 주자 마자, 새우들이 수초에 붙어서 뭔가 냠냠 맛있게 먹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물 만난 고기' 마냥 좋아라 하더라구요~ ^^

빨간 새우들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자니까 어찌나 귀엽던지! 수초만 3주 가까이 보다가 고추장 색깔의 새우들이 어항 안을 돌아 다니니 감탄+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열마리 새우들 가운데 두마리가 배가 좀 유달리 노르스름하고 빵빵더라구요. 처음 어항을 둔데다가 새우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대하 소금구이는 참 맛있다'는 정도나 알던 사람이 이게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또다시 폭풍 검색. -_-

그런데 이게 웬 일 입니까? 배가 노랗고 빵빵한 건 임신한 거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 겁니닷. 처음 키워보는데 열 마리 중에 자그마치 두 마리나 포란한 새우가 오다니요. 그 날,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퇴근하자마자 어항 앞에 딱 붙어서 그 포란한 녀석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무언가 한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요. 그 사진이 바로 이것!

위의 체리새우 배 아래쪽에 아주 자세히 보시면 뾰족하고 투명한 새끼 새우가 톡 떨어져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마나! 새우 배에서 알 상태가 아닌 새끼 상태로 나오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 저런 식으로 한마리 한마리씩 나오는 겁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어미새우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포란 도중에 알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땐 그냥 알 형태로 낳는다고 하네요)

어미새우는 왔다 갔다 하면서 수초 여기 저기에 한마리씩 새끼 새우들을 낳았습니다. 수초 심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진기한 광경이었고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니 굉장히 절묘한 타이밍이었어요.

그리고 위의 사진은 2~3일쯤 후에 찍은 아기 새우들의 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보기엔 굉장히 커보일 수 있겠지만 어미 새우의 크기가 1.5cm 정도 되고, 아기 새우들은 거의 깨알 만하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제가 요즘은 이 재미로 퇴근하고서 컴퓨터도 켜지 않게 되네요^^

졸지에 제 어항은 새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니, 새끼 새우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열대어를 넣지는 못할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체리새우를 오래 키워도 치비 보기가 힘들다고 하시던데 키운지 1주일도 채 안되어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다니 참 기쁩니다! 지리하게 긴 시간동안 물을 잡은 보람이 있어요. 그 기다림이 싫어서 만약에 그냥 마구잡이로 풍덩 풍덩 새우를 넣었더라면 이 귀여운 녀석들을 못 만났을테니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키우겠습니당~^^

PS. 오늘 점심에 보쌈을 먹으러 갔는데요. 보쌈과 함께 나온 새우젓...! 그걸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키우는 체리새우와 사이즈나 형태면에서 97% 일치하는 비쥬얼이라니...크흡! 새우깡 봉지에 그려있는 그림을 봐도 과자 자체의 형태는 새우와는 전혀 다르니 먹을 때 아무렇지 않은데, 새우젓은 정말이지.... 그럼 이 글의 제목은 "새우젓 랩소디"라고 제목을 고쳐야 하는 걸까요???

올해 초에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제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마카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일종의 "마카오 관광청 홍보 사진전" 였는데, 이국적인 느낌의 파스텔 톤 건물들이며, 아기자기한 골목들, 그리고 먹음직한 에그타르트의 자태(!)가 사진 속에는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카오는 1999년까지는 포르투갈 령이었기 때문에 유럽식 건축양식이 마카오의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 매혹적인 사진들을 보면서 나중에 마카오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게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 줄도 몰랐고 '그냥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선 그때 일을 까맣게 잊고, 올해 여름 휴가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가본 적 없는 장소로 휴가를 떠나고 싶었고, 휴가를 길게 내긴 힘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이곳 저곳을 알아 보다가, 홍콩으로 마음을 정하고 에어텔 팩키지로 3박 4일 상품을 예약하게 되었죠.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예약만 해놓고서 구체적인 여행일정은 짜지도 못하다가 휴가를 일주일 앞두고서 여행일정들을 짜기 시작했는데요. 이때서야 제가 사진 속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마카오가 홍콩에서 배로 한시간 남짓의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헉! 내가 사진 속에서 봤던 바로 그 마카오가 홍콩에서 그렇게 가깝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홍콩여행 3박 4일 기간 중에 하루는 마카오 관광을 다녀왔지요. 세나도 광장, 성 도미니크 성당, 몬테요새, 콜리안 빌리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 그리고 환상적인 맛의 로드 스토우즈 에그타르트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좋았지만 그 중의 백미는 바로 시티 오브 드림즈 리조트에서 본 대규모 수중 쇼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House of Dancing Water)'였습니다.

사실은 이렇게까지 굉장한 쇼인줄 모르고서 관람을 했는데요. 공연 끝나고나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구요. 공연이 끝나고서 나올 때 우연히 다른 관람객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이 공연이 무려 3,000억원을 들여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쇼라고 하더라구요. 정말 그 돈을 들였을 법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수중과 육상무대가 자유자재로 변환되는 전용극장에서 다이빙, 아크로바틱, 러시안 그네, 분수 쇼, 모터바이크 등의 갖가지 볼거리가 90분 공연동안 다양하게 펼쳐지더군요. 

원형 무대의 잔잔했던 물에서 해적들이 매달린 어마어마한 높이의 돛이 솟아 오르기도 하구요. 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수중무대가 사라지고 지상무대로 바뀌기도 합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예매하고서 앞에서 세번째 줄에서 공연을 관람했는데, 앞쪽 좌석은 물이 튀길 수 있어서 좌석마다 수건이 놓여 있더라구요. 공연을 보는 동안에 물 속에서 튀어나온 배우들이 장난스럽게 관객석으로 물을 튀기기도 했고,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다이빙 하는 배우들 때문에 조금씩 물에 젖기도 했는데 이 역시 소소한 재미였어요. 이 수중공연장은 무려 깊이 8m, 지름 49m의 규모인데, 이 곳엔 올림픽 공식 수영장보다 5배나 많은 물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공연장의 천장도 굉장히 높은데, 공연 말미에는 무려 26.5m 높이에서 배우가 다이빙합니다.

이 공연의 예술 감독은 프랑코 드라곤 이라는 연출가인데 이 분은 20여년간 태양의 서커스에 몸 담으며, 라스베거스의 유명 쇼인 '퀴담', '알레그리아', 'O' 등을 만든 분이라고 하네요. 이 공연에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서 비롯된 칠정(七情)을 바탕으로 중국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며 특별한 대사없이 쇼 자체로 줄거리를 보여주기 때문에 국적과 상관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스토리 자체에 기대하시면 조금 실망하실 수 있지만, 다양한 볼거리들과 연기자들의 '진기명기'에 가까운 묘기들은 어떤 공연에 뒤지지 않습니다. 혹시 마카오에 놀러 가시는 분들께는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공연 예매는 공식 홈페이지인 http://thehouseofdancingwater.com/en/에서 가능합니다. 좌석 구역과 등급을 선택하면 다소 랜덤하게 좌석이 배정되는데요. 저는 마음에 드는 좌석을 받느라 열번 넘게 시도했던 것 같아요. 뭐 결국은 원형 극장이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앉든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몇 장면은 VIP 석이라면 더 좋았겠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가령 물안개가 자욱하게 무대 위에 생기면서 그 물안개 위로 아른하게 여인의 모습이 투사되어 떠오르는 장면 같은 부분은 정면이면 더 좋았겠죠. 참고로 저는 B Class 의 별표로 표시된 자리에서 관람했고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공중에서 펼쳐지는 연기들을 볼 때는 위로 올려다 봐야 했지만 힘들거나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B Class 이상에 한해 학생할인이 있으니, 학생 분들은 더욱 저렴하게 예매하실 수 있어요. 티켓을 받을 때에 한국 학생증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예매하실 때에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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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뮤지컬 위키드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너무 기뻐서 폴짝 폴짝 뛰었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느무 보고 싶어했으나, 좌석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바로 그 Wicked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요. 내한공연의 비싼 티켓 가격 때문에 망설이다가 예매 시작일로부터 며칠 흐른 뒤에 예매 사이트에서 좌석을 조회해 봤는데! 이런 쉣!!!! 좋은 좌석이 그새 다 나간 거에요. 멘붕 상태에 잠시 빠졌으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죠!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건 맘껏 하면서 즐겁게 살자는 신념으로 티켓을 질렀습니다. Saint Paul님께서 이럴 때 꼭 필요한 명언을 하셨드만요. "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단 한번밖에 인생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캬...므찌당!!! 한 페이지 한페이지가 이렇게 소중한데, 그깟 티켓 가격이 대수인가요?!!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속에서 나쁜 마녀로 그려지는 서쪽 마녀가 사실은 꽤 괜찮은 사람이며, 사람들이 모르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상상에서 이야기는 펼쳐지는데요. 어린 시절에 오즈의 마법사를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콩쥐팥쥐 만큼 친숙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저처럼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스토리라인을 더듬어 가다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묘하게 짬뽕되면서 결말은 안드로메다로 훌쩍 날아가곤 하죠. (개콘식으로 표현하자면...어디갔어? 어디갔어? 도로시 어디갔어? 강아지 토토는 또 어디갔어? 내 기억력은 다 어디갔어???)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어요. 번외편을 알기 전에 우선 본편에 해당하는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부터 속성으로 마스터하기! 그럼 시작해 해볼까요?

도로시는 캔자스주에서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도로시네 집은 회오리바람에 휩쓸러 날아가고, 도로시는 아름다운 오즈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집이 떨어진 곳은 다름 아닌 동쪽 마녀가 있었던 곳! 나쁜 동쪽 마녀를 실수로 죽이고서 도로시는 동쪽 마녀의 구두를 신고 켄자스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오즈의 나라는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초록의 다섯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신기한 왕국으로 온갖 이상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와 마녀들이 다스리고 있었어요. 착한 마녀로부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부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 도로시는 오즈가 살고 있는 에메랄드 시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지요. 여행길에서 도로시는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싶어하는 허수아비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어하는 겁쟁이 사자를 만나 동행하게 되요. 

마침내 아름다운 에메랄드 시에 도착한 도로시와 그 친구들은 위대한 오즈 마법사에게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오즈는 윙키들을 다스리고 있는 서쪽 나라의 나쁜 마녀를 없애기 전에는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갖가지 위기를 겪고 서쪽 마녀에게 붙잡히지만, 실수로 마녀에게 물을 부어서 그녈 녹여 없애게 됩니다. 그리고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차서 에메랄드 시로 돌아오지요. 

그러나 위대한 마법사 오즈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으로 도로시와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요. 마법사 오즈는 결국 허수아비에게는 왕겨로 만든 뇌를, 양철 나무꾼에게는 비단으로 만든 심장을 주고, 겁쟁이 사자에게는 용기를 주는 가짜 약을 마시게 하지요.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몹시 기뻐합니다. 마법사 오즈는 커다란 풍선 기구를 만들어서 도로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지만, 그만 실수로 혼자 에메랄드 시를 떠나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허수아비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 오즈 대신 에메랄드 시의 왕이 되고, 양철 나무꾼은 서쪽 나라의 나쁜 마녀 대신 윙키의 나라를 다스리기로 하구요. 겁쟁이 사자는 동물의 왕이 되어 숲 속을 다스립니다. 마지막까지 소원을 이룰 수 없었던 도로시는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으로 마침내 캔자스로 돌아갑니다. 

여기까지가 원작인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입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이야기죠. 한때는 저 역시도 이런 이야기를 보며, 나는 착하게 살테야! 뭐 이런 의지를 활활 불태웠지요. 허나 살다보니 세상 이치라는 게 조금은 모순되고 나쁜 애들이 오히려 잘되는 꼴도 봐야 하더이다. 게다가 더욱 억울한 것은 역사란 승자의 편에서 쓰여지기 마련인지라, 진실이 어떠하건 간에 약간의 사실들을 짜집기하여 "승자=착하다"이라는 기묘한 수식을 만들어 놓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꼭 진실인 건 아니에요. 때로 우린 fact의 작은 단면 만을 보고서, 진실을 단정짓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잖아요.  소설 위키드를 집필한 그레고리 머과이어는 사람들의 이와 같은 맹점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 위키드는 동명소설을 무대 위로 옮긴 작품입니다만, 소설 위키드와 뮤지컬 위키드의 내용이 100% 일치하지는 않아요. 소설이 조금 더 어둡고 무겁다고 한다면, 뮤지컬은 좀 더 밝은 편이라고들 말합니다.  

저는 6월 13일 공연을 보고 왔는데요. 으아~그 감동은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가창력과 무대 장치, 스토리 그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함 그 자체였습니다. 나중에 뉴욕에 가면 정말 또 보고 싶어요. 우정에 대해서, 다양성에 대해서, 진실과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뮤지컬이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자격없는 자(!)가 권력을 장악하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을 불러 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부터는 뮤지컬 위키드를 보실 분들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라서 미리 알려드립니다. '나는 공연을 보기 전에 그 스토리를 먼저 알고 싶지 않아!'라는 분들은 살포시 창을 닫아 주세요. 하지만 제 경험상 뮤지컬은 적당히 내용을 알고 봐야 오히려 춤이나 노래, 의상, 무대 기타 등등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120%쯤 즐길 수 있더라구요. 자~ 그럼 이제 뮤지컬 위키드의 이야기 속으로 고고~ 고고~ ^^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 주민들이 서쪽마녀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착한 마녀 글린다가 거대한 비눗방울을 타고 손을 흔들며 내려와서 나쁜 마녀가 정말 물에 녹아버렸다는 걸 공표하죠. (첫 장면부터 글린다의 자아도취+주책스럽지만 귀여운 면모가 보이는데, 그녀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Isn't it good to see me?" 이라고 명랑하게 외칩니다. 푸핫! 뭐야...이 여자.!! "여러분을 뵙게 되어 반가워요"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절 보니까 참 기쁘시죠?"라고 묻다니 말입니다! 글린다는 정말 사랑스럽고 재미있지만 대중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모습이 조금은 딱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잠시 엘파바의 탄생에 대한 비밀이 나오는데, 사실 엘파바의 엄마는 어떤 의문의 남성이 주는 초록색의 신비스러운 약을 마시고서, 그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서 초록색 피부의 아기를 낳게 되었던 겁니다. 여하튼 이야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엘파바의 죽음에 대해 듣고 있던 오즈 주민 중에 한명이 글린다에게 묻습니다. 나쁜 마녀와 당신이 친구였다던데 사실이냐고 말이죠. 이에 시간은 또다시 거슬러 올라가 쉬즈 대학에 엘파바와 갈린다가 입학하던 때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땐 글린다(Glinda)가 아니고 갈린다(Galina)였는데 나중에 이름이 왜 바뀌게 되는지는 후에 차차 알게 됩니다-

엘파바와 네사로즈의 아버지는 먼치킨랜드의 영주인데, 그는 초록색 피부를 가진 첫째딸을 미워하고, 둘째 딸인 네사로즈만을 총애합니다. 둘째딸은 출중한 외모를 지녔지만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어 휠체어 신세를 지는 둘째 딸을 돌보게 하기 위해 첫째딸인 엘파바도 쉬즈대학에 함께 입학 시킵니다. 쉬즈 대학에 입학한 엘파바는 기숙사 배정 문제로 네사로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분노하여 자신이 지닌 강한 마법의 힘을 우연히 드러내게 되고, 이로 인해 모리블 학장의 관심을 사게 됩니다. 한편 엘파바와 갈린다는 우연히 한 방을 배정받게 되고, 자신과는 너무 다른 상대에게 마뜩지 않은 심경을 드러 냅니다.

장면은 바뀌어 쉬즈 대학의 유일한 동물 교수이자 염소인 딜라몬드 교수가 등장합니다. 딜라몬드 교수는 '갈린다' 발음이 잘 되지 않아 늘상 '글린다'라고 부르곤 하는데요. 그는 역사 수업 중간에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실 예전에 오즈에서는 동물들이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이를 억압하는 反동물의 움직임이 있어 동물들이 조금씩 위축되어 말을 잃어가고 딜라몬드 교수만이 강단에 남은 상황이었죠. 심지어 교실 칠판에는 누군가 "Animals should be seen not heard. - 동물은 구경하라고 있는 것이지, 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낙서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딜라몬드 교수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Colorful'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뮤지컬 위키드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자 이야기의 핵심이 됩니다. 나와 다른 존재 -가령 피부색이 다르다거나, 종이 다르다거나, 지향이 다른 이들-에 대해서 '입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는 주류사회의 종용과 압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적하는 거죠. )

한편 장면은 전환되어,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바람둥이 왕자 피에로가 쉬즈 대학에 전학을 오는데요. 갈린다는 그를 보고서 첫 눈에 반하고, 그에게 접근하여 무도회에 피에로와 함께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갈린다에게 사소한 문제가 생겼죠. 그녀에게 반한 보크가 옆에 찰싹 달라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으니, 피에로와의 애정전선에 걸림돌이 생긴 셈입니다. 이에 갈린다는 꾀를 냅니다. 휠체어 신세를 지는 딱한 네사로즈를 무도회에 초대하라고 보크를 설득한거죠. 이런 속내도 모르고서 네사로즈는 보크의 초대를 받고 생전 처음으로 무도회에 가보게 되어 행복해 합니다. 

무도회에 참석한 갈린다는 모리블 학장에게서 마법 세미나에 들어와도 좋다는 뜻밖의 허락을 받게 됩니다. 사실 갈린다는 마법 세미나에 줄곧 참석하고 싶어했으나, 그녀에겐 마법적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맞았거든요. 그랬던 모리블 총장이 갑자기 뜻을 바꿔 갈린다를 마법세미나에 넣어 주게 된 것은, 바로 엘파바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엘파바는 자신의 동생인 네사로즈가 생전 처음으로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 일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었죠. 이 일을 알고서 갈린다는 무척 놀랍니다. 갈린다는 엘파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엘파바를 놀려주려고 이상한 뾰족 모자까지 선물해 무도회에 쓰고 오라고 했던 참이었거든요. 갈린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엘파바는 갈린다가 놀려주기 위해 선물한 뾰족한 모자를 쓰고서 무도회에 등장합니다. 다른 학생들은 엘파바의 기괴한 뾰족 모자를 보며 놀려대지만, 엘파바가 꿋꿋하게 혼자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갈린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서 엘파바와 함께 춤을 추며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우정이 싹트게 됩니다. 기숙사에 돌아온 두 사람은 밤새 수다를 떨며, 갈린다는 엘파바를 '인기녀'로 변신시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음날 쉬즈 대학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 집니다. 오즈의 경찰들이 딜라몬드 교수를 체포해 가고, 딜라몬드를 대신해서 온 교수는 철장에 갇힌 새끼 사자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동물들은 말을 해서는 안되며, 동물들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새로운 정책을 알립니다. 이에 엘파바는 분노하고 피에로는 그녀를 도와 겁에 질린 새끼 사자를 훔쳐 함께 숲속으로 달아 나게 됩니다. 숲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야릇한 분위기가 감돌게 되지만, 피에로는 황급히 떠나고 엘파바는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는 아마도 아름다운 갈린다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체념합니다.

한편 모리블 학장은 엘파바에게 와서 드디어 오즈의 마법사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고 알려 줍니다. 엘파바는 드디어 "반동물" 정책의 문제점을 오즈의 마법사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합니다. 또한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님이라면, 자신의 초록색 피부도 희게 바꿔줄 수 있을지 모른다며 희망을 품게 되죠. 에머랄드 도시로 떠나는 엘파바를 환송하러 나온 갈린다는 피에로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이때 엘파바를 배웅나온 피에로를 본 갈린다는 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픈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항상 잘못 발음했던 딜라몬드 교수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글린다'로 바꾼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피에로는 글린다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글린다보다 엘파바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여하튼 피에로의 관심을 사지 못해 기분이 상한 글린다에게 엘파바는 함께 에머랄드 도시로 떠나자고 제안하고 둘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떠나게 됩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엘파바가 그에게 동물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고 싶다고 부탁하자, 마법사는 그 대가로 고대의 주술서를 보여주며 자신의 하인인 원숭이 치스터리를 날도록 주문을 걸라고 엘파바에게 요청합니다. 엘파바 자신의 타고난 마법적 능력과 마법서에 적혀있는 주문이 합쳐지자, 치스터리는 괴로움이 몸부림 치다가 날개 돋은 원숭이가 되지요. 괴로워 하는 치스터리의 모습을 본 엘파바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가 날개 달린 원숭이를 만든 이유는 동물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애초부터 그는 동물들을 자유롭게 할 생각은 없었다는 걸 뒤늦게 엘파바는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주술을 되돌릴 수 없었죠. 오즈의 마법사는 아무런 마법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저 "열기구를 타고 어쩌다가 오즈로 날아오게 된 평범한 남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무능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여론을 통제하고 감시할 목적으로 '동물들의 대화'를 금지했던 것이며, 이를 위해 엘파바의 능력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엘파바는 그에게 반기를 듭니다. 이에 오즈의 마법사는 경비대를 호출하여 엘파바와 글린다를 추격하도록 지시합니다. 그 둘은 성의 탑 꼭대기까지 도망가게 되고, 언론을 통제한 모리블은 엘파바가 사악한 존재이니 절대 그녀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합니다. 엘파바는 마법서에 적힌 주문으로 빗자루를 날게 하고 글린다에게 빗자루를 타고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글린다는 거절하고 엘파바 혼자서 떠나게 되지요. (여기서 엘파바는 그 유명한 노래 'Defying Gravity'를 부르는데요.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배우의 노래실력도 굉장했지만 무엇보다 그 노래에 담긴 뜻과 공연의 줄거리가 합쳐져 감동 백만배!!!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시간이 흘러 엘파바는 '서쪽의 나쁜 마녀"로 불리게 되고, 글린다와 모리블은 기자회견을 열어 엘파바 체포령을 알립니다. 엘파바를 아직까지 잊지 못한 피에로는 경비대장이 되어 그녀를 찾고 있지요. 한편 엘파바는 숨을 곳을 찾아 동생 네사로즈를 찾아오는데, 네사로즈는 자신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은 언니를 비난합니다. 이에 엘파바는 네사로즈에게 주문으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네사로즈의 보석구두에 마법을 걸어 주고, 한평생을 걷지 못하던 네사로즈는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기쁨에 찬 네사로즈는 자신이 사랑하는 보크를 부르는데요. 보크는 네사로즈에게 이젠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을 그만 놓아 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은 글린다를 사랑했음을 고백합니다. 이에 분노한 네사로즈는 엘파바의 마법책을 보고 엉터리 주문을 외우는데, 잘못된 주문으로 보크의 심장은 쪼그라듭니다. 엘파바는 죽어가는 보크를 위해 다른 주문을 걸게 되는데, 이로 인해 보크는 바로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이 됩니다. 엘파바는 주문을 읽을 줄을 알았으나, 그게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 주문을 외울 때마다 불행한 결과가 나온다는 자책감에 엘파바는 괴로워합니다.

한편 엘파바는 날개달린 원숭이들을 구하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찾아갑니다. 마법사는 엘파바의 힘을 다시 얻기 위해 원숭이들을 풀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엘파바는 그의 검은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도망치던 중에 피에로와 우연히 마주칩니다. 피에로는 엘파바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고, 엘파바와 함께 도망칩니다. 이에 글린다는 배신감에 휩싸여 모리블에게 네사로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소문을 내면 엘파바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글린다가 말한 것은 '소문을 내라'는 것이었지만, 악랄한 모리블은 네사로즈에게 실제로 끔찍한 일을 일으킬 작전을 세웁니다. 

모리블은 날씨를 변화시켜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켄자스의 주택을 날아오게 했고, 네사로즈를 덮치게 만듭니다. 엘파바는 직감적으로 네사로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느끼고 서둘러 그곳으로 가지만, 이미 네사로즈는 '도로시'네 집에 깔려 죽은 뒤 였고 게다가 네사로즈의 유품인 보석구두까지 도로시가 "훔쳐" 간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서 모리블의 계략으로 이 곳에 잠복해 있던 경비병들이 엘파바를 붙잡으려 하자, 피에로는 엘파바를 자신이 소유한 성으로 도망치게 하고서 자신은 병사들에게 붙잡힙니다. 엘파바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게 될 피에로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고, 이로 인해 피에로는 고통을 당하지 않는 "허수아비"가 됩니다.

한편 엘파바 덕분에 목숨을 살렸지만, 그녀 때문에 양철 나무꾼이 되었다고 원망하는 보크와 엘파바 덕분에 구출되었음에도 그녀가 납치한 탓에 겁장이가 된 것이라고 믿는 사자, 그리고 오즈의 주민들은 엘파바를 잡기 위해 그녀가 숨어 있는 성으로 몰려 옵니다. 글린다는 친구인 엘파바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와서, 이젠 그만 도로시를 놓아 주라고 엘파바를 설득합니다. 이때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서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오즈를 맡아 잘 다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서 엘파바는 도로시가 부은 물에 천천히 녹아 내려 사라집니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데요. 엘파바가 평소에 소중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유품 "초록액체가 담긴 병"이 오즈의 마법사의 방에서 본 것과 같은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사실은 오즈의 마법사가 바로 엘파바의 친아버지였던 것이죠. 오즈의 마법사의 꿈은 바로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는데, 정작 자신의 딸을 몸쓸 짓을 한 셈이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실권을 장악한 글린다는 오즈의 마법사는 기구에 태워 오즈를 떠나도록 명령하는 한편, 악행을 거듭한 모리블은 감옥에 가둡니다.

한편 허수아비 피에로가 등장하여 성의 바닥에 달린 비밀문을 여는데요. 놀랍게도 여기에서 엘파바가 나옵니다. 사실 엘파바는 죽은 것이 아니었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떠나기 위해 엘파바가 물에 녹아 죽은 양 속임수를 펼쳤던 것이었죠. 허수아비와 초록마녀는 행복하게 떠나가고, 글린다는 오즈 주민들과 달콤씁쓸한 축배를 들며 뮤지컬은 막을 내립니다.

한번쯤은 꼭 볼 만한 강추 뮤지컬, 위키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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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에서 받은 초대권으로 본 뮤지컬 힐링하트 시즌2 입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해 초에도 롯데백화점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 초대권을 받아서 꽤 재미있게 봤었네요. 힐링하트 시즌2의 티켓에 적혀있던 '자살방지 특별법'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이건 일종의 계몽 뮤지컬인가 했는데 정말 공연장에 가보니까 보건복지부에서 보낸 화환이 서있는거에요. 놀라서 검색해 보니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자살 방지를 위해 후원하고 있는 창작 뮤지컬이었습니다.

주인공 '김대리'는 직장에서는 만년 대리로 일하다가 쫓겨나다시피 퇴사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에게도 이별을 통보받게 됩니다. 김대리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사고까지 치게 되고,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신비의 인물에게서 자살 불가 통보를 받게 되는데요. 천상세계에서 요즘 자살률이 너무 높아 새로운 자살법이 생겼고, 자살할 만한 자격을 심사하여 상위에 랭크된 사람만을 자살 가능하게끔 선정한다는 황당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자살하고 싶다면, 김대리 앞 순위 사람의 자살을 막아 열심히 살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10대, 연예인을 꿈꾸는 가수 지망생, 대출빚에 시달리는 직장인 등등 우울한 상황에 처해 자살하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는 2009년을 기준으로 28.4명인데, 이는 33개 OECD 국가 중에 가장 많으며, 하루 평균 42.2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입니다. 교통사고와 암(癌)을 제치고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순위입니다. 특히 20대의 경우 사망원인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4.6%가 자살이었고, 30대(34.1%)와 10대(29.5%)에서도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어찌나 가슴이 답답하던지... 이 뮤지컬을 보면서 새마을 운동을 떠올린 것은 저 뿐일까요? 60~70년대의 '잘 살아 보세!' 라든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의 캠페인을 2시간 동안 관람한 느낌이었어요. 그 시대의 방식대로 '자살하지 말자' 라든지, '세상은 제법 살 만 해요' 등의 주입식 문구들을 나열하면, 사람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걸까요? 히융.... 자살을 막기 위한 뮤지컬이라니...참 씁쓸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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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6월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연극 <산불>을 보고 왔습니다. 뮤지컬은 참 좋아하지만, 연극은 즐겨 보는 편이 아니라서 어쩌다가 연극 초대권을 받게 되면 가끔 한번씩 가서 보곤 하는정도인데요. 연극 <산불>은 제 돈을 내고 봤던 몇 안되는 연극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제가 초대권으로 봤던 연극들은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연극 산불은 출연하신 분들의 연기 내공이며, 무대 스케일이 남달랐습니다.

특히 강부자씨 연기는 도저히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소백산골의 한 여인네가 정말 내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듯한 굉장한 사실감이 전해졌습니다. 작년에 본 연극인데도 그분의 존재감이 어찌나 강렬하고 잊혀지지 않던지, 지금도 강부자씨가 아니라 정말 강부자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진정한 연기자는 배역을 맡아 연기를 펼칠 때엔 유리가면을 쓰고 자신 안에 그 캐릭터가 빙의된 것처럼 연기를 한다고 하잖아요. 일본 만화 유리가면에서 주인공 마야의 연기 묘사를 보면서, 허풍 작렬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강부자씨는 유리가면을 쓰신 것 같았습니다. 사월 역을 분한 장영남씨의 광기 어린 연기 또한 참 훌륭했고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대단한 연기력을 지닌 분들이라서 국립극장의 큰 무대를 꽉 채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연극 <산불>은 무대 장치도 현실감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제가 봤던 연극은 "나 연극이거든" 이라고 말하듯이, 굉장히 간결하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던 데에 반해, 산불의 무대는 디테일이 살아 있더라구요. 무대 위의 갈대밭이라든가,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의 오막집들, 산으로 연결되는 듯한 바위들...이 모든 것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 극에 더욱 집중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 공연은 故 차범석 5주기 기념 특별공연이었고, 한국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임영웅씨가 연출했다고 합니다. 차범석 님은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분이며, 연극 <산불>은 196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여러 극단과 단체, 학교 등지에서 꾸준히 올라가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백산맥 한 줄기에 없는 듯이 묻힌 두메산골. 남자들은 하나같이 국군과 빨치산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거나 길을 떠났고, 마을은 노망난 김노인과 아이들을 빼곤 졸지에 모두 여자들만 남은 과부촌이 되었다.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남한 일대에는 다시 평화와 재생의 물결이 일고 있으나 험준한 산악 지대인 이‘과부마을’에는 밤이면 공비들이 활개를 치는 그늘진 마을로, 여자들은 남자들을 대신해 공출과 야경에 시달린다. 양씨의 며느리 점례는 이 마을에서는 드물게 유식자이며 아름답고 젊은 과부이고, 최씨의 딸 사월이도 딸 하나를 둔 젊은 과부이다. 어느 눈 내리고 추운 밤, 점례의 부엌으로 부상당한 한 남자(규복)가 숨어들고, 점례는 규복을 마을 뒷산 대밭에 숨겨준다. 규복에게 동정심을 품은 점례는 음식을 날라주며 규복과 사랑을 나누는데, 어느 날 점례와 규복의 밀회장면을 사월이 목격하게 된다.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고, 여자들의 혼란은 커져만 간다. 3개월 후, 사월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헛구역질을 해댈 무렵, 국군의 빨치산 토벌작전이 본격화되어 국군은 점례네 대밭에 불을 지르기로 한다.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두 여인도 모두 불 속으로 뛰어든다. (자료출처: 플레이디비)

대학 다닐 적에 '희곡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실주의 연극에 대해서도 배웠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주의 연극의 특징은 몇가지로 추려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향이 있으며, 대사나 무대장치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네번째의 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여 연기한다는 것이었어요. 쉽게 예를 들어 햄릿 같은 연극을 떠올려 보시면, 사실주의 이전의 낭만주의 희곡과의 차이가 느껴지실 거에요. 그 어색한 문어체의 대사며, 일반인과는 너무 동떨어진 인물들.... (사실주의 연극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

아무튼 참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 기분 좋았어요.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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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경에 이대 삼성홀에서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왔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야 리뷰를 올리게 되네요.

그리스(Grease)는 남자들이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 기름을 뜻하는데요. 올백으로 머리를 쓸어넘긴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고교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좀 노는 남자 고등학생 대니와 순진한 여학생 샌디의 사랑과 오해, 그리고 해피앤딩~ 트랄랄라..뭐 이런 내용입니다.  

뮤지컬 그리스는 꽃미남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어 왔다고 하네요. 이선균, 지현우, 오만석, 엄기준 등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엔 이현씨가 대니역을 맡으셨는데, 오션이라는 그룹의 가수 출신이라고 하는데 꽤 준수한 외모셨어요.

신나는 음악과 배우들의 열연은 대체로 만족했지만, 스토리 면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많았어요. 고교생들의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다는 면에서 미국 드라마 글리(Glee)와 비교해 보게 됩니다. 미국 고교생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스토리가 가볍게 전개된다는 점에선 두 작품이 상당히 비슷한데요. 주제에 도달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깊이가 확연히 다릅니다. 글리는 독특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사건과 갈등을 통해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고민을 풀어내는데 반해, 그리스는 좀 마초적이고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적당히 마무리해 버립니다. 순수했던 샌디가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일탈을 택함으로써 대니와 적당히 해피앤딩을 맺는다는 맹숭맹숭한 결말이라니...흐음!

P.S. 저는 포스터 속 포즈 따라하길 좋아합니다....하지만 저 사진을 보니까....다음부턴 절대 저러지 말아야겠네요....저 사진 때문에 내가 나를 디스하는 포스팅이 되어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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