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보이차를 마셨던 곳은 서울에 있는 한 중국집이었어요. 보통 중국집에서는 자스민차를 주잖아요. 그런데 그 중국집에서 준 것은 진한 갈색의 뜨거운 차였습니다. 특별한 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실 때의 느낌이 부드럽고 은은한데다 느끼한 중국 요리와도 찰떡궁합이더라구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인분께 차의 종류를 여쭤보니 중국에서 직접 구입해 온 '보이차'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후로 보이차에 대해 관심은 가지게 되었으나, '중국산'에 대한 묘한 불신으로 인해 찾아서 마시지는 않다가 이번에 유기농 보이차를 구입했습니다.

여기서 짧막하게 보이차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요. 보이차는 중국의 운남이라는 지역에서 나온 찻잎-대엽종 쇄청모차-을 원료로 발효과정을 거쳐 만든 차인데요. 보이차는 형태에 따라서 찻잎이 낱낱이 흩어지는 형태의 산차와 단단하게 뭉쳐놓은 형태의 긴압차로 나뉩니다. 긴압차는 뭉쳐놓은 모양에 따라 병차, 타차, 전차 등으로 구분되지요. 그리고 차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보이생차와 보이숙차로 나뉩니다. 보이생차는 아직 발효되지 않은 상태의 원료로 차를 만들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도록 만든 차구요. 보이숙차는 인공적인 방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차를 발효시킨 것이지요.

보이차를 마실 때에는 보통 첫번째 잔은 마시지 않고 버립니다. 이 과정은 세차 또는 세다(洗茶)라고 하는데요. 이는 차를 제대로 우려내기 전에 차의 먼지를 씻어 내기도 하고, 찻잎이 잘 우려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참고로 대략 5~10초 정도가 적당하다고 합니다. 보이차는 아주 뜨거운 물에 우려내는데요. 녹차는 아주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떫은 맛이 나는데 반해 보이차는 팔팔 끓인 물에 마셔야 제 맛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구입한 차는 Rishi Tea(리쉬 티)에서 만든 Pu-Erh Classic 입니다. Pu-erh tea또는 Puer tea (푸얼 티)는 보이차의 영어식 표기니까 우리말로 적당히 번역하자면 리쉬 클래식 보이차 정도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이 차는 보이숙차 중 산차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차나 음식을 접할 때 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요. 리쉬에서 나온 클래식 보이차를 마실 때, 가을 낙엽 같은 독특한 향이 유독 강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맛은 부드럽고 입에 머금고 있으면 끝에 살짝 달콤한 맛이 나요. 처음 마실 때엔 낙엽같은 독특한 향기 때문에 '이크..이거 뭐지 -_-' 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잔 두잔 마시다보니까 나름 매력이 있더라구요. 흙과 같은 따뜻한 느낌이랄까요...(어릴 때 동네 친구 중에 흙 집어 먹던 애가 갑자기 떠오르는데...전 단연코 그런 어린이는 아니었습니다. N.E.V.E.R) 

아침 공복에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다는 것도 보이차의 장점입니다. 녹차는 보통 빈 속에 마시면 상당히 부대끼는 편인데 반해, 보이차는 발효된 차라서 그런지 편하고 좋네요. 식전이든 식후든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맘에 듭니다. 게다가 보이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항암효과도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답니다. 

제가 구입한 Rishi의 보이차에는 USDA Organic 마크가 그려 있는데요. USDA는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의 약자로 미농무부를 뜻합니다. 미농무부가 인증한 유기농 제품이라는 뜻이지요. 미국 내에 유통되는 유기농제품들은 미농무부 나름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이 마크를 붙여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엔 Fair Trade 마크도 새겨져 있는데요. 이것은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가 공정한 이익을 받을 수 있게끔 유통된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개의 마크가 함께 새겨져 있다는 건, 소비자의 건강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윤리까지도 고민했다는 의미겠죠.

건강에도 좋고 윤리적인 차라니 멋지군요! 이 차의 정체모를 낙엽향기+흙내음 만 아니면 제가 더 많이 좋아했을텐데요. 그래서 아주 살짝 아쉽지만.... 혹시 모르죠. 이 독특한 향기에 길들여지다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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