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서울에서 샤갈 전시회가 있었는데, 그때 'Entre chien et loup'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 작품의 제목이 해질녘이었던가..황혼이던가...뭐 그런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어린 마음에 "에이..이건 아니지..."하면서 같이 갔던 친구에게 주절거리며 열심히 설명했었거든요.  

L'heure entre chien et loup는 직역하자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뜻인데, 프랑스어로 황혼녘을 뜻해요. 그러니까 작품명이 영 이상하게 번역된 셈은 아니었어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붉은 석양이 내려올 즈음에는 저 멀리서 내게 달려오는 짐승이 나를 반기는 우리집 개인지, 아니면 나를 덤비려고 하는 늑대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순간이 온다고 하지요. 작품을 그리던 당시에 샤갈 스스로가 갖고 있던 국적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이 섞여 있는 제목이 적절히 '의역'된 것이 못마땅했었어요. "해질녘" 이라는 제목에서는 이런 고민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요. ^^

상상해봐요. 붉은 석양이 내려온 하늘, 조금씩 사그라드는 빛..그리고 멀리서 내게 달려오는 짐승 한마리의 희미한 윤곽. 미친듯이 도망가야 할지, 두 팔을 벌려 반겨야 할지 어찌할 바 모르겠죠? 가끔 인생에서 그런 순간들이 오잖아요. 모든 게 분명하지 않고 희미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난처한 순간들 말이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순간들이 더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아요. 상대가 내 적인지 친구인지 구분되지 않는 순간, 심지어 내 스스로가 '개'인지 '늑대'인지 조차 흔들리는 순간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개와 늑대 사이에서' 오락가락 했답니당.  "에잇! 개면 어떻고 늑대면 어때. 그냥 잘 살면 돼.."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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