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강부자씨 연기는 도저히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소백산골의 한 여인네가 정말 내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듯한 굉장한 사실감이 전해졌습니다. 작년에 본 연극인데도 그분의 존재감이 어찌나 강렬하고 잊혀지지 않던지, 지금도 강부자씨가 아니라 정말 강부자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진정한 연기자는 배역을 맡아 연기를 펼칠 때엔 유리가면을 쓰고 자신 안에 그 캐릭터가 빙의된 것처럼 연기를 한다고 하잖아요. 일본 만화 유리가면에서 주인공 마야의 연기 묘사를 보면서, 허풍 작렬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강부자씨는 유리가면을 쓰신 것 같았습니다. 사월 역을 분한 장영남씨의 광기 어린 연기 또한 참 훌륭했고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대단한 연기력을 지닌 분들이라서 국립극장의 큰 무대를 꽉 채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연극 <산불>은 무대 장치도 현실감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제가 봤던 연극은 "나 연극이거든" 이라고 말하듯이, 굉장히 간결하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던 데에 반해, 산불의 무대는 디테일이 살아 있더라구요. 무대 위의 갈대밭이라든가,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의 오막집들, 산으로 연결되는 듯한 바위들...이 모든 것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 극에 더욱 집중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 공연은 故 차범석 5주기 기념 특별공연이었고, 한국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임영웅씨가 연출했다고 합니다. 차범석 님은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분이며, 연극 <산불>은 196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여러 극단과 단체, 학교 등지에서 꾸준히 올라가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백산맥 한 줄기에 없는 듯이 묻힌 두메산골. 남자들은 하나같이 국군과 빨치산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거나 길을 떠났고, 마을은 노망난 김노인과 아이들을 빼곤 졸지에 모두 여자들만 남은 과부촌이 되었다.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남한 일대에는 다시 평화와 재생의 물결이 일고 있으나 험준한 산악 지대인 이‘과부마을’에는 밤이면 공비들이 활개를 치는 그늘진 마을로, 여자들은 남자들을 대신해 공출과 야경에 시달린다. 양씨의 며느리 점례는 이 마을에서는 드물게 유식자이며 아름답고 젊은 과부이고, 최씨의 딸 사월이도 딸 하나를 둔 젊은 과부이다. 어느 눈 내리고 추운 밤, 점례의 부엌으로 부상당한 한 남자(규복)가 숨어들고, 점례는 규복을 마을 뒷산 대밭에 숨겨준다. 규복에게 동정심을 품은 점례는 음식을 날라주며 규복과 사랑을 나누는데, 어느 날 점례와 규복의 밀회장면을 사월이 목격하게 된다.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고, 여자들의 혼란은 커져만 간다. 3개월 후, 사월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헛구역질을 해댈 무렵, 국군의 빨치산 토벌작전이 본격화되어 국군은 점례네 대밭에 불을 지르기로 한다.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두 여인도 모두 불 속으로 뛰어든다. (자료출처: 플레이디비)
대학 다닐 적에 '희곡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실주의 연극에 대해서도 배웠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주의 연극의 특징은 몇가지로 추려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향이 있으며, 대사나 무대장치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네번째의 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여 연기한다는 것이었어요. 쉽게 예를 들어 햄릿 같은 연극을 떠올려 보시면, 사실주의 이전의 낭만주의 희곡과의 차이가 느껴지실 거에요. 그 어색한 문어체의 대사며, 일반인과는 너무 동떨어진 인물들.... (사실주의 연극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
아무튼 참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 기분 좋았어요.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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