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수많은 일선 학교에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의 원인과 해결방안들이 논의될 때면, 장년층 분들께서 꼭 말씀하시는 내용 중 하나가 '우리 어릴 때엔 그런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반응입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이지메 현상을 겪어 왔지만 우리에게는 1990년대만 해도 이런 것들이 다소 생소한 개념이기도 했고, 실제로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왕따나 집단 따돌림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용어가 없었다고 해서 당시에 집단 따돌림의 문제 자체가 없었던 것일까요? 이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참 신기하다고 느꼈던 점 중에 하나는 도심이나 동네 거리, 어디에서나 장애인들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서울 도심에서는 장애인을 만나는 일이 굉장히 드문 일인데, 파리에서는 장애인들과 가끔씩 마주칠 수 있었고 심지어 저와 기숙사에서 한 방을 나눠 쓰던 룸메이트의 남자친구 역시 경미한 장애를 갖고 있었지요. 왜 파리에서 저는 많은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혹시 국가별로 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장애인의 비율이 아니라 그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는 심리적 장벽의 높이 차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생뚱맞게 갑자기 장애인 이야기를 왜 꺼내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나 소수자들에게 참 가혹한 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장애의 유무에 기인하는 장벽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불합리한 종류의 장벽들과 집단 따돌림이 조금은 다른 형태로 우리 문화 안에 참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었고 더욱 공고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족 이데올로기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다문화 가정의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은 아직도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으며,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장벽에 막혀 장애인들은 현관 밖으로도 나오지 못해 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예전에 집단 따돌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해왔던 것이지요.
게다가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체계는 옳음과 그름에 대해 단 하나의 잣대만으로 평가하여 획일화된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학교 교육체계 속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 왔을까요? 단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하며 그 답에 자신을 비집어 넣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아이들은 한편으론 그런 세상을 원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조금 다른 소수의 아이들에게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집단 따돌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와 조금만 달라도 마치 그것은 ‘틀린 것’ 인양, ‘잘못된 것’인양 매도하고 배척하는 문화가 우리들 안에 참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이 집단 따돌림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들 하지요. 다수의 아이들이 조금 다른 소수의 아이들을 따돌리는 모습은 소수자를 배척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애인, 다문화 가정, 성적소수자, 독거노인에 이르기까지 힘없고 수적으로 열세에 속하는 이들에게 향하는 이유 없이 따가운 시선은 – 참 부끄럽긴 하지만 – 제가 어릴 때에도 있었고 제가 성인이 되어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청소년 집단 따돌림 문제들을 어떻게 단순히 청소년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그 문제만을 분리하여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아이들에게만 변화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그 해결을 위해 두 가지 측면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청소년부터 중 장년층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반성하고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획일화된 교육체계, 소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존재의 욕구쯤은 희생하라는 식의 배금주의, 잘못된 방향의 강압적 집단주의,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내면부터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우리는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이나 경제시스템만 모방했을 뿐, 철학이나 이념, 사상과 같은 내적 성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한국이 기적적인 경제적 성장은 이룩했을지언정 우리 안의 마음은 심하게 병들어 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과정, 각종 미디어의 컨텐츠 개발단계, 정부 정책 전반까지도 인간의 존재의 가치에 대한 성찰과 다양성 존중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두 번째로 건전한 또래문화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들이 시급합니다. 집단 따돌림을 하지 말라는 캠페인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집단 따돌림] 이라는 문제상황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또래들이 건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단체활동들을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이는 것을 장려하고 예산을 지원하여 심적으로 소외 받는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 주며, 다른 한편으로 모든 일선 학교에 심리상담을 전공한 상담교사들을 배치해 실질적인 상담기회를 학생들에게 준다면 지금보다 상황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쩌면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집단 따돌림을 막고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아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첫걸음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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