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받아 들이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항상 쓰던 "가래떡"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가래+떡으로 보여 상당히 더럽게(-_-;) 느껴진다거나, 친한 친구의 얼굴이 생판 남처럼 보인다거나, 내가 즐겨 입던 겨울코트가 문득 몸서리치게 촌스러워 보인다거나...

언제부턴가 제 눈에 이 사이트 명칭 green consumer라는 말이 점점 기묘하게 보이기 시작했지만, 위와 같은 맥락에서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기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Green Consumer는 백과사전에까지 등록된 명실상부한 신조어입니다. (Green Consumer의 뜻 바로가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의 Green과 소비를 뜻하는 Consume라는 두 개의 단어 조합은 뭔가 모순되고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소비는 어떠한 형태로든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게다가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은 소유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소유물이 과연 소유자의 특징을 규정지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친환경용품을 소유하거나 소비한다고 해서, 그를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환경사랑은 특정 상품의 소비를 통해 완성되는 개념일까요?

우리는 종종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기 위해 "그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곤 합니다. 사람을 채용할 때에 그의 지적 수준을 알기 위해 그가 소유한 학위나 자격증을 살펴 보고요. 타인이 소유한 차나 집을 보고서 그의 생활수준을 판단하지요. 연봉의 액수가 곧 자신의 능력이며, 직위나 직책이 곧 자신의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소유가 곧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이러한 논리로 따져보면, 덜 가진 사람은 덜 가져서 불행하고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지 못해 불행하지요.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소유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며,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소유(Having)에 집착하는 부류와 존재(Being)에 집중하는 부류로 말이죠.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거나 사회적 특권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고, 더 많은 물질적 가치를 소유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존재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능동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들을 발견합니다.

어떤 제품을 소비하고 무엇을 소유하느냐라는 기준을 가지고서 Green Consumer를 규정짓는다면, 이 공간은 또다른 소비, 또다른 소유를 부추기는 꼴이 됩니다. 세제를 넣지 않더라도 세탁이 가능한 세탁기가 나왔다고 해서, 기존에 사용하던 일반 세탁기는 당장 버리고 새것을 구입해야 그 사람이 Green Consumer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소유가 곧 우리의 존재는 아니니까요.

가래떡이 가래+떡(....!)이 아니듯, Green Consumer가 반드시 Consume을 전제로 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Green Consumer로서 갖춰야 할 것은 특정제품 소비가 아니라 4R (Reuse, Refuse, Reduce, Recycle)의 자세입니다. 쓴 물건을 다시 쓰고 환경에 유해한 제품은 거절하고, 소비를 줄이고,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것이죠. 소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기를 희망합니다. 소유나 소비는 결코 죄악이 아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답은 아닙니다. 소유를 통한 만족은 결국 또다른 이름의 감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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