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새우를 키운 지 벌써 한달 넘게 되었네요. 새우를 집에서 키운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건 뭥미-_-?"의 반응들을 보이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김장 담그거나 라면 끓일 때 넣으려고 키우는 것이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아니.어떻게 알았지?)

제가 키우는 새우들은 식용은 아니고 체리새우라는 1~2cm 정도의 작은 관상용 새우인데 고추장처럼 빨간 색깔이 매력인 아이들입니다. 보통 우리가 보통 아는 새우는 회색이잖아요. 여하튼 10마리의 체리새우들이 처음엔 그냥 다 빨갛게만 보였는데 열심히 들여다보니 그 미묘한 발색의 차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군요. 체리새우 가운데 생이새우처럼 색이 흐린 녀석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회색 새우들과 체리새우가 서로 교잡이 되면 후대에는 색이 흐려 지기도 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희한한 것은 이걸 알게된 이후부터 10 마리 중에 딱 한마리가 자꾸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빨간 반면에, 딱 한 녀석은 전혀 빨갛다고는 볼 수 없는 그냥 새우젓에 들어가는 새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회색빛 새우더란 말입니다. 저 새우 한마리 때문에 나의 소중한 새우항이 회색 새우 천지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조금씩 생겨나더군요. 그 녀석을 분리시켜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공간을 나눠 두었더니 미안하게도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을 그리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컸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이제 정말 빨간 체리새우들만 남았다는 안도감 또한 생기더군요.

그런데 너무 기괴한 일이 그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그 회색 새우 한 마리가 별이 되었으니, 정말 예쁜 9마리의 빨간 체리새우만 남게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수조 안에 거무튀튀한 새우 한 마리가 갑자기 제 눈에 띄더란 말입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봐도 그 새우가 '안녕? 나 원래부터 여기 있었는데?' 이러면서 저를 빤히 쳐다보더라는 거죠! (물론 그 새우가 말은 안했어요 -_- 새우가 말을 하면 그따위 색깔이 문젭니까!?) 제가 은연중에 새우 열 마리를 색깔 순서대로 1등부터 10등까지 열 세워놓고 있었는데, 10등 하던 꼴찌가 떠나가고 나니 9등이 꼴찌가 되어 또다른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잭 웰치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잭 할아버지가 GE에 도입하여 사용하던 인사시스템인 활력곡선 (vitality curve)을 저는 우연히 새우항에 도입한 셈이었으니까요. 잭 웰치는 활력곡선을 이용해 조직 구성원을 평가 등급에 따라 상위 20%는 핵심 정예, 70%는 중간, 10%는 하위층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핵심 정예층은 특별 대우를 받으며 리더로 양성되고 중간층은 지속적인 교육, 훈련을 통해 핵심 정예가 될 수 있도록 육성하고 하위 10%는 퇴출 대상이 되지요. 하위 10% 퇴출은 곧 열 마리의 새우들 중 회색새우 한 마리 골라내기와 같은 '적자생존'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하위 10%를 골라내고 골라내다보면, 정말 우성인자들만 남아 끝내주게 잘나가는 조직(또는 어항)이 되나요?

불행히도 새우항의 예에서 보여지듯, 조직 내에서 활력곡선의 도입은 정말 위험할 수 있는 발상입니다. 하위 직원을 내보내면 1~9등만 남게 되니 일 잘하는 사람만 남게 되고, 회사에서 퇴출 당하지 않기 위해 모두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는 활력 넘치는 조직이 될 거라는 환상을 가질테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10등 새우가 떠나가면 9등 새우는 저절로 하위 10%가 됩니다. 회색 새우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9마리의 빨간 새우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립니다. 나를 언제 쫓아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가 협동하기 보다는 하위 10%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밟기에 급급합니다. 회사에 위기가 생기면, 회사라는 거대한 배를 구하기 위해 모두 함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다른 배에 승선하기 위해 서둘러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합니다.

물론 건전한 조직을 위해 적절한 수준의 turnover는 필요할테지요. 하지만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의 '활력곡선'은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0등이라 할지라도, 조직 내에서 그가 하는 역할이 분명 존재합니다. 또한 지금은 10등 일지라도 그에게 관심과 기회를 준다면 핵심 정예가 될지 모릅니다. 더불어 조직의 문화가 건전한 방향으로 가면, 건전한 수준의 순환이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봐요. 잭~ 당신은 새우를 키워봤어야 했어요. 

P.S. 갈색 줄무늬의 새우들도 몇일 전에 제 수조로 이사 왔어요. 꺄앗. 너무 예쁩니다. 굳이 경영학적인 화법로 이야기하자면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랄까요. 아항항항~어때요, 잭? 부러우시면 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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