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폭 23cm의 한뼘 크기 어항을 인터넷으로 구입했습니다. 물고기는 매장에서 직접 구입하려고, 물고기를 뺀 나머지 물품들을 온라인으로 샀죠. 생명을 책임지고 키우는 일이니 무작정 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네이버 검색을 통해 관련된 포스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작은 초소형 어항이더라도 여과기도 필요하다고 하고 이것 저것 준비할 게 많더라구요.

글로 배운대로 걸이식 여과기도 설치하고 수초도 심고 물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잡는다는 건 물고기를 넣기 전에 어항에 물을 담아서 수도물의 화학적인 성분들이 분해될 수 있게끔 시간도 주고, 안정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주일쯤 지나고 나니, 탁했던 물이 맑아지기에 이젠 열대어를 사서 넣어도 되겠다는 마음에 신림동에 있는 꽤 큰 열대어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마음으로 점찍어 두었던 열대어들을 이것 저것 구경하고서 귀염 돋는(!) 노오란 라미네지 두 마리를 구입하기로 결정!

예쁜 물고기도 골랐으니 신나는 마음으로 결제를 하려는데, 점원 분이 어항에 물 잡을 때 여과 박테리아는 넣었냐고 갑자기 제게 물어 보시는 겁니다. 저는 수질 안정제만 넣었는데, 박테리아제 역시도 꼭 넣어줘야 한다고 하시면서 물고기는 사지 말고 우선 여과 박테리아를 넣어주고 일주일쯤 후에 오라고 하시더군요. -_-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물을 잡겠다고 일주일도 넘게 기다렸는데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라니! 꼭 그걸 넣어야 하는 거냐고 재차 묻자 그걸 넣어줘야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산다고, 여과 박테리아들이 있어야 물이 맑게 유지되는 거라고 설명해 주시네요. 장사하는 분이니 편하게 물고기와 함께 박테리아제든 뭐든 한꺼번에 팔면 그만일텐데, 굳이 물고기는 다음에 사라고 말리시니 물고기 구입은 후일을 기약하며 그냥 돌아 왔지요.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수초 어항은 참 심심했습니다. ㅠ_ㅠ 그래도 참고 참고 참아 일주일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그쯤 흐르자 어항엔 조금씩 이끼들이 생겨나더군요..또다시 네이버 지식검색!!! 이끼 제거엔 새우가 최고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체리새우를 구입했습니다. 

새우를 어항에 넣기 전에 '물맞댐'을 해서 1시간에 걸쳐 수온도 맞춰 주고, PH도 맞춰주고서 한마리씩 조심스럽게 입수시켰지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생물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어항의 물을 새우가 담긴 봉지 속 물과 조금씩 섞어 주어서 새로운 환경에 점진적으로 적응시키는 과정을 '물맞댐'이라고 합니다) 사실 물맞댐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걱정이 되었는데 물맞댐 후에 어항으로 입수해 주자 마자, 새우들이 수초에 붙어서 뭔가 냠냠 맛있게 먹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물 만난 고기' 마냥 좋아라 하더라구요~ ^^

빨간 새우들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자니까 어찌나 귀엽던지! 수초만 3주 가까이 보다가 고추장 색깔의 새우들이 어항 안을 돌아 다니니 감탄+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열마리 새우들 가운데 두마리가 배가 좀 유달리 노르스름하고 빵빵더라구요. 처음 어항을 둔데다가 새우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대하 소금구이는 참 맛있다'는 정도나 알던 사람이 이게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또다시 폭풍 검색. -_-

그런데 이게 웬 일 입니까? 배가 노랗고 빵빵한 건 임신한 거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 겁니닷. 처음 키워보는데 열 마리 중에 자그마치 두 마리나 포란한 새우가 오다니요. 그 날,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퇴근하자마자 어항 앞에 딱 붙어서 그 포란한 녀석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무언가 한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요. 그 사진이 바로 이것!

위의 체리새우 배 아래쪽에 아주 자세히 보시면 뾰족하고 투명한 새끼 새우가 톡 떨어져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마나! 새우 배에서 알 상태가 아닌 새끼 상태로 나오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 저런 식으로 한마리 한마리씩 나오는 겁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어미새우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포란 도중에 알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땐 그냥 알 형태로 낳는다고 하네요)

어미새우는 왔다 갔다 하면서 수초 여기 저기에 한마리씩 새끼 새우들을 낳았습니다. 수초 심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진기한 광경이었고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니 굉장히 절묘한 타이밍이었어요.

그리고 위의 사진은 2~3일쯤 후에 찍은 아기 새우들의 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보기엔 굉장히 커보일 수 있겠지만 어미 새우의 크기가 1.5cm 정도 되고, 아기 새우들은 거의 깨알 만하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제가 요즘은 이 재미로 퇴근하고서 컴퓨터도 켜지 않게 되네요^^

졸지에 제 어항은 새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니, 새끼 새우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열대어를 넣지는 못할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체리새우를 오래 키워도 치비 보기가 힘들다고 하시던데 키운지 1주일도 채 안되어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다니 참 기쁩니다! 지리하게 긴 시간동안 물을 잡은 보람이 있어요. 그 기다림이 싫어서 만약에 그냥 마구잡이로 풍덩 풍덩 새우를 넣었더라면 이 귀여운 녀석들을 못 만났을테니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키우겠습니당~^^

PS. 오늘 점심에 보쌈을 먹으러 갔는데요. 보쌈과 함께 나온 새우젓...! 그걸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키우는 체리새우와 사이즈나 형태면에서 97% 일치하는 비쥬얼이라니...크흡! 새우깡 봉지에 그려있는 그림을 봐도 과자 자체의 형태는 새우와는 전혀 다르니 먹을 때 아무렇지 않은데, 새우젓은 정말이지.... 그럼 이 글의 제목은 "새우젓 랩소디"라고 제목을 고쳐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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