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 진순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합니다. 진순이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집에서 키우던 황구 진도견이었는데, 제가 성인이 된 지금도 반려견을 맞이해도 될 지 가끔씩 고민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입니다.

처음 만나던 때에 진순이는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강아지였습니다. 쫑끗 서있는 귀와 위로 솟은 꼬리.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던 눈이 예쁜 아이였죠. 집에 도둑이 들 뻔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저희는 항상 마당에 개를 키웠었는데, 오랫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반려견 쫑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나서 족보 있는 진돗개 진순이를 분양 받아 키우게 되었습니다. 진순이는 정말 용감한 아이였고, 집에 방문객이 찾아오면 정말 열심히 짖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나름 애교도 많았어요. 밥은 항상 엄마가 주었는데도, 신기하게도 엄마보다 저를 더 따르곤 했습니다. 방과 후에 제가 집에 오면 줄에 묶여있는 게 안쓰러울 정도로 껑충껑충 뛰며 꼬리를 치고 저를 반겨주곤 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와 동갑내기였던 친척 아이가 집으로 놀러 왔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문자가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진순이는 짖었죠. 그런데 개를 무서워하던 친척 아이는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집 안을 향해 달렸고, 진순이는 이 모습에 더욱 흥분하여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진순이를 묶고 있던 줄이 툭 끊어져 버렸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일순간에 벌어진 사고가 마치 영화 속의 슬로우모션을 보는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 납니다. 진순이는 그 친척 아이를 뒤쫓아 집안으로 따라 들어갔고 기어코 친척의 다리를 물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나를 무척 좋아하고 따르던 그 착한 진순이가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마당에서 저를 항상 반기던 진순이의 집은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공격하는 개가 사람과 같이 살 수 없다는 부모님의 결정은 단호했습니다. 팔려가던 그때에 진순이는 자기 운명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에 무척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습니다. 내 눈앞에서 친척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컸고, 진순이의 공격을 제대로 말리지 못해 진순이를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자괴감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반려견의 그런 갑작스런 공격적인 행동에 저도 심리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0년도 더 흐른 일이지만, 반려견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진순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때와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웠고,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시 접곤 했지요. 개보다 작은 앵무새나 열대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그런 사고가 나지 않겠다 싶어 다른 반려 동물들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돌고 돌아도 다시 개에게 마음이 가더군요. 아마도 신뢰로 가득찬 강아지의 반짝이는 눈, 나를 향한 적극적인 환호와 가족을 반기는 몸짓들, 그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반려견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를 양육하는 데에도 그토록 많은 교육학적 지식과 심오한 심리학적 이해가 필요한데, 하물며 우리와 종이 다른 개의 행동을 이해하며 평생 함께 산다는 건 오죽 어려울까요. 그래서 관련 도서들을 구입하고 인터넷 검색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책이 바로 "개가 행복해지는 긍정교육"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굉장한 기쁨이지요. 이 책은 그런 기쁨을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 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저자 잰 페넬(Jan Fennell)은 늑대사회의 속성과 개의 행동심리에 대해서 굉장히 간결하지만 설득력있게 설명하더군요. 반려견의 문제행동들은 대부분 잘못된 서열 인식에서 비롯되며, 반려견 자신이 그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믿는 한, 분리불안이나 과도한 짖기, 공격성 등의 문제행동들은 결코 교정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늑대의 행동 특성에 기반을 둔 아미시엥 본딩 (Amichien Bonding) 교육법을 제시합니다. 참고로 아미시엥의 아미(ami)는 불어로 친구라는 뜻이고 시엥(chien)은 개 라는 뜻입니다. 강압적인 훈련법과 달리 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개의 습성을 바탕으로하여 견주와 반려견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긍정적 교육법이라는 뜻이지요.

늑대사회에서는 집단 내 서열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네 가지의 대표적인 상황들이 있는데 이는 ①먹이를 먹을 때, ②사냥(산책)을 나갈 때, ③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④무리를 보호할 때 입니다. 이 네 가지 상황에서 견주는 "이 무리의 리더는 견주 자신"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반려견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반려견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는 주인이 먼저 먹는 행동을 취하고, 산책을 나갈 때에는 주인이 앞장서야 하며, 재회의 순간에는 5분간 반려견의 행동을 무시하고, 개가 외부인에게 짖는 상황에서는 견주가 상황을 통제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침실과 같은 견주만의 공간에는 반려견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모든 교육과정은 2C 원칙 (Consistent & Calm)에 따라 일관되고 침착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초크체인과 같은 도구를 쓰지 않더라도 개들의 행동심리를 이해하면 올바른 훈육은 가능하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진순이를 떠올리고 이 책을 읽으며 한참 울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진순이는 결코 괴물이 아니었으며, 그 충직한 아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동안에 진순이는 우두머리로서 무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한순간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을 것입니다. <침입자>에게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줄을 끊고 달려가서 공격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진순이에게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주었더라면, 우두머리가 자신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더라면, 방문자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걸 명확히 알려 줬더라면....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떤 희망의 실마리를 본 것 같아 가슴이 마구 뛰더군요.

이 책에는 감동적인 일화가 하나 나옵니다. 저자는 반려견들과 산책 중에 우연히 엄청난 벌떼에게 쫓기게 되고, 한참을 달려서야 자동차문을 열고서 차에 간신히 올라 타게 됩니다. 그리고선 벌들에게 쏘인 반려견들의 수많은 상처들을 치료하기 위해 인근 동물병원으로 가게 되지요. 수의사가 상처를 치료해주며 "도망간 개들을 찾느라 고생하셨겠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저자는 반려견들이 그 위급한 상황에서 단 한 마리도 도망가지 않았었음을 깨닫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자의 반려견들은 벌떼가 쏘아 대는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리더'인 견주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개는 당연히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앞서 달릴 수 있었을텐데, 리더를 향한 신뢰가 얼마나 깊었으면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도망가지 않고 그녀를 뒤따르며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당분간 반려견에 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지루하게 긴 준비와 학습의 결론이 '반려견을 맞이하지 않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성급한 입양으로 중도에 반려견을 포기하고 파양할 거라면, 애초에 그 생명의 무게를 두려워해서 입양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테니까요. 수많은 유기견들이 거리에 버려지고, 또 그 많은 아이들이 끔찍한 형벌의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 갑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의 책임은 결국 '주인'에게 있습니다. 섣불리 입양을 결정한 주인, 잘못된 반려견의 행동을 제대로 고쳐주지 못한 주인, 그리고 그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주인....제 뼈아픈 경험은 진순이 하나의 희생으로 족합니다. 이제는 리더로서의 준비가 충분히 되었을 때에,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충분한 준비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르니, 좋은 배우자를 위한 기도만큼이나 좋은 반려견을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반려견의 마지막 날까지 행복하게 함께 하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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