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 인생은 처음에 계획한 것과는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곤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라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열대어를 키우고 싶어서 어항에 물도 넣고 수초도 심으며 준비하던 저는 이끼 제거 차원에서 새우 몇 마리를 어항에 넣었고 어쩌다보니 그곳이 새우항이 되어 현재 CBS (Crystal Black Shrimp)와 체리새우를 열심히 키우고 있지요.

새우들을 키우다 보니, 보면 볼수록 참 귀엽고, 새우들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됩니다. 새우들이 바닥을 열심히 뒤적거리며 뭔가 냠냠 주워 먹는 모습도 귀엽고, 방란하여 아기새우들이 돌아 다니는 것도 신기하고, 또 가끔은 물고기처럼 수초 사이를 폴폴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예쁩니다. 가끔은 새우를 귀여워하는 제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에니매이션 심슨가족에서 호머가 바닷가재를 애완용으로 애지중지 키우던 에피소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해요. 참고로 그 에피소드 결말은 다소 황당한데... 호머 심슨은 따뜻한 물에 바닷가재 Pinchy (네이밍 센스 짱!)를 목욕시키려다 실수로 뜨끈하게 익혀서 죽이고, 호머 심슨은 Pinchy의 죽음을 슬퍼하며 냠냠 먹습니다...읭?! -_-

여튼 평화롭던 저희집 새우항에 언제부턴가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게 됩니다. 어항에 이상한 생물들 -작고 하얀 점과 가늘고 흰 선-이 나타나 꼬물거리기 시작했던 것이죠 -_- 너무 작아서 이게 뭔가 했는데 그 흰 점의 이름은 코페포타였고, 흰 선의 이름은 미즈지렁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생태적으로 새우가 살기 적합한 어항에서 나타나는 착한 생물들이었지만 외관상 제 마음에 드는 애들은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열대어들이 사는 어항에서는 쉽게 잡아 먹히는 편이지만, 새우들은 얘들을 잡아 먹지 못하더군요. 이때 제 마음 속엔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새우를 잡아 먹지 못할 정도로 작은 열대어라면, 코페포타와 미즈 지렁이를 잡아 먹으며 새우와 함께 공생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지요.

새우는 열대어와 함께 키울 수 없다?

새우와 열대어 합사에 관한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새우와 함께 키울 수 있는 열대어를 알려 달라는 질문을 새우 관련 동호회에 올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새우는 열대어와 함께 키울 수 없다! 정 함께 키우겠다면 새우 번식은 포기해야 한다! 열대어와 합사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참 다양했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죠.

생태 피라미드의 약자: 새우는 사람들 입맛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 입맛에도 참 맛있나 봅니다. 하긴 물고기 입장에서 새우는 먹기도 편하고, 맛도 좋고, 키토산과 칼슘, 타우린도 섭취할 수 있으니 일석 삼조의 영양식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던 생태학적 피라미드를 떠올려 보더라도 쉽게 이해되실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도 새우는 생태 피라미드의 하위에 속해 있으며, 육식을 하는 어류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훌륭한 영양원입니다. 게다가 수조에 있는 열대어들은 만날 맛없는 가공 건조사료만 먹는데, 그 애들 눈 앞에 먹음직스러운 생새우가 왔다 갔다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퍽퍽한 통조림만 매일 먹던 호랑이 앞에 통통한 생닭을 두는 셈인거죠.

눈에 띄는 색상: 새우전문가 Ryan Wood에 따르면, 새우는 자연 상태에서는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합니다. 이때 새우의 보호색은 새우를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게끔 도와주기 때문에 위험을 줄여주는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관상용 새우들은 눈에 아주 잘 띄는 색상으로 교배를 통해 인위적으로 브리딩 된 것입니다. 야생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빨갛고 파랗고 새하얀 새우들은 자신의 보호색이 없는 셈이며, 이 때문에 육식성 어류와 함께 관상용 새우를 키울 경우 수조에서의 새우 생존 확률이 급격히 낮아 집니다. 육식성 어류의 눈에 이런 현란한 색상의 관상용 새우들은 네온램프를 달고 있는 것만큼이나 잘 보이니까요.

탈피를 통한 성장: 새우와 같은 절지동물은 탈피 과정을 통해 외골격을 벗은 다음 성장해 갑니다. 새우의 탈피 주기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수조의 수질이나 영양상태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새우를 키우다보면 허연 새우 껍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새우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새우들은 탈피를 할 때에 표면이 극도로 민감해진 상태가 되어 이때 잘못 건드리면 죽기도 하는데, 호기심 많은 열대어가 이때 새우를 톡톡 건드리면 소중한 새우가 어떻게 될까요? 속설에는 새우가 탈피할 때에는 물고기들의 후각에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도 합니다. 이때 물고기 입이 새우를 꿀꺽 삼킬만큼 크지 않더라도 새우를 톡톡 건드려서 죽게끔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치새우들의 크기: 일반적인 관상용 민물새우들의 크기는 다 자라도 2.5cm 정도입니다. 야마토 새우와 같이 5~7cm까지 크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새우들은 상당히 작습니다. 번식을 하게 되어 아기 새우들이 갓 태어나면 그 크기는 우리 눈으로 잘 안보일 정도지요. 아기 새우들은 치새우(稚새우), 치비(ちび: 꼬마를 뜻하는 일본어) 또는 치하(稚蝦)라고도 부르는데 갓 태어났을 때엔 깨알보다 훨씬 작은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치새우들은 아무리 작은 물고기들도 잡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습니다. 치새우는 열대어들이 간식 정도로 뚝딱 해치울 수 있겠지요.

높은 가격: 저는 지금 체리새우와 CBS를 키우고 있는데, 제가 키우는 두가지 종류 이외에도 관상용으로 품종이 개량된 새우들은 참 다양합니다. 생이과의 스노우볼, 블루펄, 오렌지새우부터 크리스탈새우에 속하는 CRS (Crystal Red Shrimp), 골든아이, 팬더, 킹콩 등등....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의 새우들이 다 있습니다. 그 등급에 따라서는 한마리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새우들도 있어서, 혹여라도 물고기와 합사시켰다간 초호화 물고기 밥이 되는 셈이니 그 후덜덜한 가격의 새우를 누가 감히 열대어와 합사시키겠어요? ^^;;;

무엇보다 애정!: 물론 제가 지금 키우는 새우들은 고가의 새우는 아니지만, 가격을 떠나서 제 애정을 들여 키우는 새우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처음 체리새우를 구입했을 때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새우였을지 몰라도 제 눈엔 한마리 한마리가 모두 소중하고 특별했습니다. 더 빨갛고 좋은 혈통의 후대를 굳이 갖지 않더라도 두번 다시 선별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로 말입니다. (해당 포스팅 바로가기)

새우와 열대어를 함께 키우기 위한 조건

위에 설명한 이유들이 새우와 열대어의 합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소중한 새우들을 키우면서 그 애들이 물고기 밥이 될까봐 안절부절 할 수는 없으니 대부분 새우 브리더들은 새우만 단독으로 키우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대어를 새우와 함께 키우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래에 설명드리는 내용은 위의 위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새우와 열대어의 합사를 감행하려는 분들께 알려 드리는 내용입니다.  

새우와 키우는 게 가능한 어종은 아주 드물긴 해도 있긴 있습니다. 위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여,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열대어의 특성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해조류 등 식물성 먹이를 먹는 어종일 것 ② 호기심이 많지 않고 공격적 성향이 적을 것 ③ 가급적 입이 작고 성어의 크기가 작을 것 ④ 약산성(PH 6.0~6.5)의 따뜻한 물(24~26도)에서 사는 어종일 것 등입니다. 합사하는 열대어의 어종 이외에 어항의 조건도 맞아야 하는데, ①모스나 수초가 어항에 무성해서 어린 새우들이 숨을 만한 공간이 많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며 ② 새우와 열대어가 모두 살 수 있는 온도와 PH가 필요하고 ③ 충분한 여과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새우와 합사 가능한 열대어 목록

Ryan Wood는 그의 글에서 채식성 어류와 새우의 합사는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위험도에 따라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열대어 종류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1. 100% confident to list as shrimp safe (새우와 합사해도 안전함)

  • Ottos  (오토싱)

  2. Potentially harmful (잠재적 위험가능성 있음)

  • Plecos (플레코)
  • Tetras (테트라): 카디널 테트라, 네온 테트라 등
  • Guppies (구피)
  • Endlers (엔들러): 엔들러 타이거 등
  • Rasboras (라스보라): 라스보라 헤테로몰파, 라스보라 브리짓데 등
  • Cory's (코리)
  • Danios (다니오)

  3. Do not house (새우합사 금지)

  • Cichlids (시클리드)
  • Discus (디스커스)
  • Angels (엔젤)
  • Gouramis (구라미)

  4. any other fish not mentioned could be harmful (상기어류 이외에는 합사시 위험할 수 있음)

합사시 주의사항!!

재차 강조하지만, 모든 어류는 -심지어는 위에 안전하다고 언급된 오토싱 조차도- 새우에게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토싱은 육식성이 아니며 채식성 어류라고는 하지만, 오토싱이 이끼를 츕츕 열심히 먹는 바로 그때에 치새우가 이끼 위에 있다가 '실수로' 오토싱 입안으로 쏙 빨려 들어갈 수도 있고, 오토싱이 호기심에 새우를 톡톡 건드렸다가 탈피 중인 새우를 죽게 할 수 있지요. 100% 안전하게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어류는 없다는 것은 거~ 꼭 명심해 주세요.

그리고 어항에 수초나 모스가 무성해야 치새우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꼭 기억해 주세요. 어항의 충분한 여과력은 당연한 필수 조건입니다. 어항의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야 소중한 새우도 살리고, 예쁜 열대어들도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으니까요~

참고로 저는 위에 리스트에는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드핀 라이스피쉬라는 소형 어종을 새우들과 합사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는 성체 크기가 2cm 미만인 아주 작은 송사리과의 물고기인데, 파란 레이져를 슝슝 발사하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이 매력적인 아이들입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새우들과 합사 시킨지 두달 정도 되었는데, 아직 죽은 새우는 없었습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클릭!)

자료출처: http://www.planetinverts.com/safe_tankmates_for_shrimp.html

http://www.shrimpkeep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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