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저희 집에는 세계명작동화라는 빨간색 하드커버의 동화 전집이 있었습니다. 전집이라고는 했으나, 책장에 온전하게 나란히 끼워져 있는 법이 없었죠. 화장실에 두 권, 책상 옆에 한 권, 피아노 위에 한 권...여기 저기에 어지럽게 놔두고는 손이 갈 때마다 읽곤 했는데요. 유치원에 다녀와서는 따뜻한 방바닥에 엎드려 엄마가 주신 누룽지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그 동화책들을 읽던 나른한 오후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어떤 날엔 상상 속에서 소공녀 세라가 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엔 해저 이만리 속의 주인공이 되어 정신없이 도망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몽구스와 독사의 결투에서는 제가 어린 몽구스가 되어 뱀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고요.

몽상가 기질과 그 책들 덕분에 저는 상상력이 참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엔 제가 위대한 화학자가 되어 아무도 몰랐던 엄청난 신약을 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 집에 있던 모든 약들을 꺼내서 모두 한데 모아 가루로 만든 다음 정성껏 개어 보기도 했지요. 제가 조금 더 무모했더라면 그 짬뽕약을 먹어 보고 효능까지 확인했을 텐데, 안 그랬던 게 참 다행이지요...^^ 외교관이 되어 전세계를 다니는 상상에 빠져 영어 공부에 몰두하기도 했구요. 또 어떤 날엔 나이팅게일 같은 간호사가 될거라는 희망에 빠져 주사기를 갖고 놀다가 큰 일 낼 뻔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상상합니다. 제가 지금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라고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제 재능이나 노력에 비해 많은 것들을 얻는 행운을 누리고 있으며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송구스럽기도 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어, 앞으로 더 노력해서 많이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곤 합니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는 세계재난보고서를 통해 전세계 인구의 15%정도인 9억2500만 명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만약에 한 교실에 40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중 6명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다는 뜻이지요. 교실의 다른 한켠에서는 비만으로 살을 빼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죠. 세계 비만 인구의 수가 기아인구를 넘어선 현상은 빈부 격차가 점점 심화하는데다 국제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식량 구입 능력에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지요. 국제 곡물가격은 올들어 투기적 거래와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급격히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어디에 서있나요? COVID-19로 인해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주변을 좀 더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최근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기아의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결국 학습기회에 관한 문제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빈곤의 세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고, 학교에 갈 수 없을 때, 학교 급식이 중단될 때, 가장 고통 받게 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답답해집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마태25,35~36)


머라이어 캐리가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녀의 소름끼치는 가창력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 속에 빠져 배시시 웃었더랬습니다. 제 추억 속의 머라이어 캐리는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살짝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돌고래 가창력의 대명사였으니까요. 회사 동호회에서 다 같이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설레는 마음으로 저 역시 냉큼 신청을 했지요. 일본 공연에서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혹평을 받았다는 신문기사를 읽긴 했지만, 설마 설마 했습니다. 공연 당일에 올림픽공원에서 제 눈으로 직접 그녀의 무대를 보면서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지요. 서너 곡쯤이 흐르고 나니, 심지어 좌석을 떠나는 관객들까지 나타났고요. 어떤 이는 아예 무대를 등지고서 그날의 개기일식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Emotion의 반주가 흐르자 초반에 환호하던 관객들조차 그녀의 형편없는 노래가 흐르자, 싸늘한 침묵과 함께 실망의 탄식까지 나왔습니다. 이 지점에 이르자 한 때의 디바였던 머라이어 캐리에게 짠한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귀여운 아이들을 녹화한 동영상이 무대 스크린을 통해 보여질 때에 전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뮤즈였던 여신이 이제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건가... 엄마가 되고 나이가 들면, 성대도 일종의 근육이니 예전같지 않은 게 당연한 것인데 내가 혹여 그녀에게 너무 과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닌가.... 그 비싼 가격이 무색한 형편없는 노래로 들으면서, 너무 과한 것을 기대한 자신을 반성했었습니다.  

공연 시작시간보다 한참을 늦게 등장한 그녀는 참 실망스러운 공연을 내내 보여주고서 마지막 곡으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불렀습니다. 그리고선 Thank you 를 딱 세번 외치고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하게 공연이 끝났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정말 이게 끝이냐고 서로 물었습니다. 관객의 박수는 있었지만 그녀의 작별 인사는 없었고 커튼콜 역시 당연히(?) 없었으며 그렇게 허무하게 추억 속 디바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는 그녀의 노래보다 그 태도에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만.약.에. 그녀가 아티스트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성의를 한국 팬들에게 보였다면 저는 이런 글을 적지 않았을 겁니다. 나이가 들었으니까 목소리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그 무대를 준비한 코러스와 악기 연주자, 댄서와 모든 스탭의 노력 덕택에 빛나는 공연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귀가 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라이어 캐리를 뺀 공연의 나머지 부분들은 실제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돌고래 창법의 환상적인 추억 속 디바는 이미 사라지고,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뻔뻔하게 노래를 부르며 관객에 대한 예의도 모른 채 공연 수익만 노리는 야시시한 드레스 차림의 탐욕스러운 여성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바로 오늘, 제가 사는 동네의 작은 아트홀에서 '로스 로메로스' 공연을 봤어요. 다소 따분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서 예매한 클래식 기타 공연이었는데, 정말 기분 좋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제지간인 할아버지 두 명과 그 할아버지의 아들과 조카, 이렇게 네 명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2시간을 꽉 채웠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갔던 연주회였는데, 그 두 시간동안 말도 안되게 행복했습니다. 풍부한 감성과 뛰어난 기교의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곡이 끝날 때마다 할아버지 연주자들의 행복한 미소에서 그들의 온화한 에너지가 모두에게 따뜻하게 전해졌습니다. 공연이 끝나고서도 끝없이 환호하는 관객들을 위해 이 분들은 무대를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오기를 네 번이나 반복하며 아름다운 앙콜곡들로 화답했습니다.

네 명이 함께 연주한다고는 해도, 오로지 기타 소리 만으로 이렇게 꽉 채워진 음악이 될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 명이 독주를 펼칠 때엔 혼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고 화려했으며, 네 명이 함께 연주할 때에는 마치 한 명이 연주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습니다. 화려한 테크닉과 유려한 스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감성이 녹아있는 연주였어요. 기타 현이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품고 있는 줄 몰랐는데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현악기가 갖는 매력에 매료되었습니다. 때로는 달콤하게 현을 가볍게 훑고, 때로는 거문고처럼 애절하게 퉁기고, 또한 때로는 카혼처럼 경쾌하게 기타의 몸통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3대째 기타를 연주하는 가문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무대였습니다. 이 멋진 가족을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또다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올까요?  겉만 번지르르한 장사꾼 M양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소박한 아티스트의 음악으로 치유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비싼 건 나쁜 법이 있어도, 싼 건 좋은 법이 없다던가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머라이어 캐리 내한공연 티켓가격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이렇게 빼어난 공연을 만끽했으니까요. 음악가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다고요? 그 말도 틀렸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연주는 머라이어 캐리의 녹슨 성대를 간단히 비웃었어요. 뭐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그런 비교 자체가 로스 로메로스와 같은 훌륭한 아티스트 패밀리에게는 모욕이니까요.  (어딜, 감히!!! 결론은 기.승.전.... 로스 로메로스!!!)

오늘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제 비밀 한 가지를 솔직하게 털어 놓겠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 짧고 보잘 것 없는 글을 하나 올릴 때조차 그 안에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제 나름의 철학과 주장을 슬쩍 숨겨 놓습니다. 블로그의 짧은 메모, 하찮은 손뜨개질,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흔들린 사진조차 그것만의 의미가 있을진데, 정성을 담아 만든 작품은 오죽하겠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닥치는대로 아무 뜻없이 허투루 할 리가 만무합니다.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라도 글을 쓸 때에 사람들은 끊임없는 고민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당나라의 가도(賈島)라는 시인이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밀다(僧推月下門)’란 시구를 써 놓고 ‘밀 퇴(推)’ 를 쓸 지, ‘두드릴 고(敲)’를 쓸 지 고뇌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작가들은 퇴고(推敲)의 과정을 거치며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주제의 결정부터 단어의 선택까지도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관념의 일부분이 투영이 되고 그 생각의 조각들이 작품 속에 아로새겨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 숨어 있는 복잡한 은유의 퍼즐을 하나 하나씩 뜯어서 맞춰보고 그 속의 숨은 그림들을 찾아보는 과정들은 참 재미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그 단순하고 유치한 줄거리 속에 숨겨진 뜻에 탄복하기도 하고, 감동해서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가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 눈에 잘 띄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슨 가족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으니,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는다고나 할까요. 헤헤..^^

이렇게 만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탓인지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을 우연히 보며 기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굉장히 충격적인 스토리이긴 한데, 뭔가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죠.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과 어딘지 모르게 어그러진 느낌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애니메이션을 정말 열심히 봤습니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은 아직 완결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 작품을 잘 모르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줄거리의 일부를 말씀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을 포식하는 다수의 거대생물 '거인'의 침공에 의해 인류는 존망의 위기에 직면한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삼중으로 구축된 거대한 성벽안에서 사는 것으로 일시적인 안전을 얻게 된다. 성벽으로 인한 평화를 얻고 나서 약 100년 후, 부모님과 소꿉친구 미카사와 함께 살던 소년 엘런은 친구 아르민과 성벽밖으로 나가 세계를 탐험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히 나타난 초대형거인에 의해 외벽이 부서지고 그 구멍을 통해 다수의 거인이 시가지에 침입, 그로 인해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엘런은 복수를 맹세한다. 벽의 붕괴로부터 2년 후 엘런, 미카사, 아르민 세 명은 제 104기 훈련병단에 입단하여 동기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한다. (출처: 위키백과)

높은 벽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던 인간들의 안이한 평화는 결국 거인의 침공으로 인해 산산 조각나며, 인류는 또다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스토리에 나오는 성벽과 거인의 메타포(metaphor)를 관객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자비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떠올릴테고, 어떤 이들은 전쟁과도 같은 현대인의 삶을 떠올릴 테죠. 어떤 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생각할테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작품 속 상징의 의미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진격의 거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역사 인식에 관한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이지요. 어쩌면 최근 하시모토의 위안부 관련 망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논쟁으로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내용들 때문에 이런 관점으로 만화를 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의구심은 아주 사소한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왜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 속 주인공은 항상 작게 묘사되는 것일까? 그들은 왜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캐릭터 -가령 아톰과 왕눈이, 케로로- 들은 아주 작고 선하며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 갑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2차대전이 패전으로 끝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던 일본인들은 작고 불완전한 아톰의 칠전팔기 스토리를 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었을 것입니다. 왕눈이는 비록 가난하고 깡마른 아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투투가 아무리 구박해도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넘어져도 일어나 피리를 부는 초긍정 개구리입니다. 케로로는 지구 침략의 음모를 갖고 지구에 왔다고 공공연히 떠들지만, 이 귀요미 개구리 중사는 매일 개그혼을 불태우며 우주네 집안 청소를 담당합니다.

"진격의 거인" 속 주인공 역시 거인에 비해 너무나 작고 힘없는 존재이며, 그의 이웃과 가족은 그 도륙의 현장에서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끔찍하게 잡아 먹히고 맙니다. 결국 작다는 것은 연약함을 의미하며, 그렇기에 동정의 대상이 되어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독특한 힘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작은 존재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거대한 존재에게 저항을 시작할 때에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유린 당하던 작고 힘없는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을 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일본은 작습니까? 일본은 진정한 피해자 입니까?

2차 세계대전은 일본을 비롯한 독일, 이탈리아가 주축이 되어 벌인 세계 규모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세계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인명 피해가 있었지요.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했지만 실제로 일본이 한 일은 피점령국의 주요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스스로 시작했던 전쟁이었고 식민지와 점령지의 독립을 탄압한 가해자 신분에 다름 아니었지만, 1945년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었으며 이때 오묘하고도 불합리한 심리적 치환이 발생합니다. 전쟁의 가해자가 일순간에 원폭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히로시마 원폭은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낳은 참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사자였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일본은 패전 이후 세계대전에 대한 대외적 책임을 지고 육해공 전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자국의 치안유지를 명분으로 경찰 예비대를 창설했고 그것이 현재는 자위대라는 명칭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1947년에 시행된 일본의 평화헌법에는 국가간의 교전권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평화헌법의 정신과 배치되는 형태로 1950년대 이후 계속해서 자위대의 전력을 확충하고 1990년대부터는 자위대의 해외파병과 집단자위권 행사 등의 명목으로 헌법을 바꾸면서까지 명실상부한 일본의 군대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을 검토해 왔습니다. (참고문헌: 두산백과 자위대 편)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만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인 자위대, 이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성벽의 역할과 묘하게 닮아 있지요. 성벽(자위대)은 보호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진격의 자유를 막는 감옥이기도 합니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평화가 유지되었기에 성벽(자위대)의 보호 기능에 대해서 자국민의 신뢰가 지나치게 강해졌으나 이 믿음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는 경고입니다. 진정한 평화 유지를 위해선 자위대가 자국을 방어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며, 적극적 공격권과 강력한 공격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들 자신의 눈에 비춰진 "작은 일본", "피해자인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죠.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거인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용맹한 훈련병단에 자원입대하라고 속삭이는 것이지요. (참고로 일본의 자위대는 모병제로써, 징병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18세 이상 27세 이하 일본 국적의 남성들이 자원입대해야만 병력 유지가 가능합니다)

사실 일본이 과거에 전쟁을 일으켰었다는 이유만으로 영구적으로 군대가 아닌 자위대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법도 합니다. 일본과 함께 2차대전의 주축국이었던 독일도 현재 자국의 군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헌법 9조는 일본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전쟁할 권리인 교전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있었으나, 최근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이 헌법 9조를 개정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승격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이에 주변국들은 술렁이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2차대전을 일으켰던 독일과 일본, 그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것일까요?

독일과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 침략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본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승격시키겠다는 주장에 주변국들이 왜 그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두 국가는 전쟁 이후에 정반대의 다른 방향으로 달려 왔기 때문이지요. 독일은 과거에 자국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해 왔습니다. 일례로 독일의 2차 대전 패망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당시 독일연방공화국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 나치 독일이 저지른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한 만행을 조금도 미화함 없이 후세대에 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와 같이 독일은 전후에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했고, 학생들의 역사 교육까지도 이를 반영했지요. 가천대 명예 총장으로 계시는 이성낙 님께서는 신문에 기고하신 글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계십니다.

"1960년대 초 독일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독일 친구들이 나치 과거사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느꼈다. 자기들의 ‘아픈 과거사’라 그러려니 했다. 몇 년이 지나 비슷한 계기에 독일 친구가 역시 같은 반응을 보여 조용하게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전후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나치 독일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답변이었다. 필자는 6·25 동란사를 분명 고교시절 역사시간에 배웠기에 더욱 의아해했다.

수년 전 바로 그 친구에게 요즘도 독일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나치 독일에 대해 가르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왜 아니 배우겠냐고 놀라워하기에, “오래전 네가 학교에서 나치 만행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그야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역사교육 담당 교사들은 필연적으로 나치 시대를 몸소 격하게 체험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치 관련 역사를 학생들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교육당국이 정책적으로 현대역사를 교육목록에서 아예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실로 참신한 교육의 역동성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사에 대한 독일 국가와 국민들의 철저한 반성의지를 향한 공감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독일 국민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경외심이 있었기에 화려한 수사에서 끝나지 않고 범국민적 반성이 따를 수 있었겠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독일에서 나치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며 아직까지도 독일 정부는 전범 관련자를 찾아내 재판에 회부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심지어 정치인이 앞장서서 위안부나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 일본이 틈만 나면 외적으로는 군비를 증강하면서 문화적으로는 이런 만화를 제작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니, 참 씁쓸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색안경을 끼고 보면 정치적인 색채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들 가운데 아이언맨이나 배트맨과 같은 영화들은 공화당의 이념을 담고 있으며, 공공연하게 미국 군수업체들의 투자를 받아 제작되는 헐리우드 영화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자국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할 수 있는 만화를 만듭니다. 저는 그걸 욕할 마음도 없고 그런 작품들을 수입하지 말자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며 제가 상관할 바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제 '숨은그림찾기'를 다른 분들께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뚜렷하고 올바른 역사관만은 부디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분별하게 타국의 문화와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관점을 계속 접하다보면, 조금씩 동화됩니다. 일본인들이 일본인의 관점에서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 나름의 "애국"이며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의 역사의식과 관점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객관적 관점이란 절대 없으며, 숨겨진 뜻이 없는 작품은 단연코 없으니까요.

수용미학(受容美學)에 따르면, 텍스트는 독자와의 상호작용으로서 읽혀지는 과정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즉,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인지되고 이해될 때에 그것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작품의 은유가 뜻하는 바 역시도 무엇이 정답이라고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겠지요. 따라서 "진격의 거인"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면 됩니다.

"진격의 거인"은 아직 완결도 나오지 않은 작품인데다 포스팅의 주제 자체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라 이 글을 적을까 말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뭔지 아느냐고 하는 기자의 질문에 신사/숙녀 할때의 그 신사가 아니냐고 답하는 고등학생의 인터뷰를 보면서 제가 감정적으로 욱해진 탓도 있을 거에요. 부디 너른 마음으로 저의 치기 어린 포스팅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저는 파시즘이나 민족주의에는 관심도 없고 그런 방향을 갖자는 것도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저희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 진순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합니다. 진순이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집에서 키우던 황구 진도견이었는데, 제가 성인이 된 지금도 반려견을 맞이해도 될 지 가끔씩 고민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입니다.

처음 만나던 때에 진순이는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강아지였습니다. 쫑끗 서있는 귀와 위로 솟은 꼬리.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던 눈이 예쁜 아이였죠. 집에 도둑이 들 뻔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저희는 항상 마당에 개를 키웠었는데, 오랫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반려견 쫑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나서 족보 있는 진돗개 진순이를 분양 받아 키우게 되었습니다. 진순이는 정말 용감한 아이였고, 집에 방문객이 찾아오면 정말 열심히 짖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나름 애교도 많았어요. 밥은 항상 엄마가 주었는데도, 신기하게도 엄마보다 저를 더 따르곤 했습니다. 방과 후에 제가 집에 오면 줄에 묶여있는 게 안쓰러울 정도로 껑충껑충 뛰며 꼬리를 치고 저를 반겨주곤 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와 동갑내기였던 친척 아이가 집으로 놀러 왔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문자가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진순이는 짖었죠. 그런데 개를 무서워하던 친척 아이는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집 안을 향해 달렸고, 진순이는 이 모습에 더욱 흥분하여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진순이를 묶고 있던 줄이 툭 끊어져 버렸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일순간에 벌어진 사고가 마치 영화 속의 슬로우모션을 보는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 납니다. 진순이는 그 친척 아이를 뒤쫓아 집안으로 따라 들어갔고 기어코 친척의 다리를 물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나를 무척 좋아하고 따르던 그 착한 진순이가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마당에서 저를 항상 반기던 진순이의 집은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공격하는 개가 사람과 같이 살 수 없다는 부모님의 결정은 단호했습니다. 팔려가던 그때에 진순이는 자기 운명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에 무척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습니다. 내 눈앞에서 친척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컸고, 진순이의 공격을 제대로 말리지 못해 진순이를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자괴감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반려견의 그런 갑작스런 공격적인 행동에 저도 심리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0년도 더 흐른 일이지만, 반려견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진순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때와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웠고,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시 접곤 했지요. 개보다 작은 앵무새나 열대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그런 사고가 나지 않겠다 싶어 다른 반려 동물들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돌고 돌아도 다시 개에게 마음이 가더군요. 아마도 신뢰로 가득찬 강아지의 반짝이는 눈, 나를 향한 적극적인 환호와 가족을 반기는 몸짓들, 그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반려견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를 양육하는 데에도 그토록 많은 교육학적 지식과 심오한 심리학적 이해가 필요한데, 하물며 우리와 종이 다른 개의 행동을 이해하며 평생 함께 산다는 건 오죽 어려울까요. 그래서 관련 도서들을 구입하고 인터넷 검색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책이 바로 "개가 행복해지는 긍정교육"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굉장한 기쁨이지요. 이 책은 그런 기쁨을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 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저자 잰 페넬(Jan Fennell)은 늑대사회의 속성과 개의 행동심리에 대해서 굉장히 간결하지만 설득력있게 설명하더군요. 반려견의 문제행동들은 대부분 잘못된 서열 인식에서 비롯되며, 반려견 자신이 그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믿는 한, 분리불안이나 과도한 짖기, 공격성 등의 문제행동들은 결코 교정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늑대의 행동 특성에 기반을 둔 아미시엥 본딩 (Amichien Bonding) 교육법을 제시합니다. 참고로 아미시엥의 아미(ami)는 불어로 친구라는 뜻이고 시엥(chien)은 개 라는 뜻입니다. 강압적인 훈련법과 달리 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개의 습성을 바탕으로하여 견주와 반려견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긍정적 교육법이라는 뜻이지요.

늑대사회에서는 집단 내 서열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네 가지의 대표적인 상황들이 있는데 이는 ①먹이를 먹을 때, ②사냥(산책)을 나갈 때, ③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④무리를 보호할 때 입니다. 이 네 가지 상황에서 견주는 "이 무리의 리더는 견주 자신"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반려견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반려견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는 주인이 먼저 먹는 행동을 취하고, 산책을 나갈 때에는 주인이 앞장서야 하며, 재회의 순간에는 5분간 반려견의 행동을 무시하고, 개가 외부인에게 짖는 상황에서는 견주가 상황을 통제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침실과 같은 견주만의 공간에는 반려견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모든 교육과정은 2C 원칙 (Consistent & Calm)에 따라 일관되고 침착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초크체인과 같은 도구를 쓰지 않더라도 개들의 행동심리를 이해하면 올바른 훈육은 가능하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진순이를 떠올리고 이 책을 읽으며 한참 울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진순이는 결코 괴물이 아니었으며, 그 충직한 아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동안에 진순이는 우두머리로서 무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한순간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을 것입니다. <침입자>에게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줄을 끊고 달려가서 공격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진순이에게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주었더라면, 우두머리가 자신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더라면, 방문자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걸 명확히 알려 줬더라면....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떤 희망의 실마리를 본 것 같아 가슴이 마구 뛰더군요.

이 책에는 감동적인 일화가 하나 나옵니다. 저자는 반려견들과 산책 중에 우연히 엄청난 벌떼에게 쫓기게 되고, 한참을 달려서야 자동차문을 열고서 차에 간신히 올라 타게 됩니다. 그리고선 벌들에게 쏘인 반려견들의 수많은 상처들을 치료하기 위해 인근 동물병원으로 가게 되지요. 수의사가 상처를 치료해주며 "도망간 개들을 찾느라 고생하셨겠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저자는 반려견들이 그 위급한 상황에서 단 한 마리도 도망가지 않았었음을 깨닫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자의 반려견들은 벌떼가 쏘아 대는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리더'인 견주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개는 당연히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앞서 달릴 수 있었을텐데, 리더를 향한 신뢰가 얼마나 깊었으면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도망가지 않고 그녀를 뒤따르며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당분간 반려견에 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지루하게 긴 준비와 학습의 결론이 '반려견을 맞이하지 않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성급한 입양으로 중도에 반려견을 포기하고 파양할 거라면, 애초에 그 생명의 무게를 두려워해서 입양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테니까요. 수많은 유기견들이 거리에 버려지고, 또 그 많은 아이들이 끔찍한 형벌의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 갑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의 책임은 결국 '주인'에게 있습니다. 섣불리 입양을 결정한 주인, 잘못된 반려견의 행동을 제대로 고쳐주지 못한 주인, 그리고 그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주인....제 뼈아픈 경험은 진순이 하나의 희생으로 족합니다. 이제는 리더로서의 준비가 충분히 되었을 때에,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충분한 준비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르니, 좋은 배우자를 위한 기도만큼이나 좋은 반려견을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반려견의 마지막 날까지 행복하게 함께 하도록 말이죠!!!

진돗개가 미국 LA에서 경찰견 훈련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영상 속의 그 아이들이 너무 예쁘더라구요. 객관적으로 어떤 신체적 특징을 지닌 진돗개가 좋게 평가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상 속 아이들의 순박한 눈매나 쫑긋하게 선 귀, 그 모든 생김새가 제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진순이 생각이 났거든요. 동영상을 보다가, 미국으로 간 그 두 마리의 진돗개 '대한이'와 '민국이'는 그 후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둘의 소식은 아래의 링크에서 찾았습니다. (뉴스 보기)

안타깝게도 두 마리 모두 경찰견 훈련에서 탈락한 것으로 나오더군요. 위에 링크된 기사에 있는 동영상은 그 아이들이 미국 경찰견 훈련을 시작했을 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훈련 전에 염려되는 것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진돗개가 흔히 한 사람만 따르는 성격이라고들 말하지만, 무척 영리하고 사회성도 좋아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한다"는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던 것이죠.

기사에서는 그 두 마리의 탈락 이유가 '잦은 기분 변화(mood swing)' 탓이라고만 나와 있어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건대 여러 핸들러들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하는 상황이 진돗개들에게는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진도라는 섬마을에서 가정견으로 키워지던 진돗개의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던 정보로는 '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꼭 필요한 미덕이었을텐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요구했던 훈련은 전혀 다른 행동지침을 요구했겠지요. 한 명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고, 임의로 바뀌는 핸들러의 지시에 따라야 하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잦은 기분 변화로 보여지는 부산한 행동들을 그 아이들이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사댓글이나 관련 포스팅들을 읽다보니, 진돗개가 미국 경찰견 훈련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로 '진돗개, 뭐 별거 아니잖아' 라든가 '역시, 진돗개는 저먼셰퍼드 만큼 똑똑하지는 않아' 등의 내용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하지만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진돗개가 저먼셰퍼드보다 열등한 것이라고 그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바늘은 털실을 짜기에 더 적합한 것 뿐이고, 작은 바늘은 옷을 꿰메기에 더욱 적합한 것 뿐입니다. 서로 다를 뿐 우열은 없습니다. 경찰견의 업무를 하기에는 여러 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성격이 필요합니다. 경찰견으로서의 자질이 평가되는 과정에서는 '사회성'이나 '일관성' 등의 지표를 중시했겠으나, 그것이 가정의 반려견을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는 없습니다. 평생 한 명의 주인과 함께 살 반려견에게 '여러 핸들러에게 복종할 줄 아는 능력'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요.

불행히도 한 해에 유기견 숫자가 어림잡아 10만마리 라고 하니, 어쩌면 한 주인에게 복종하는 진돗개의 심성이 더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을 우리가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씁쓸합니다. 주인을 잘 지켜주려고 하는 행동들이 '과도한 공격성'으로 평가되고, 한 사람을 따르는 본능이 '결핍된 사회성'으로 매도되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 진돗개의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아이들이 많은 사람들과 친구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견주가 정말 멋지게 리더로 자리 잡아서 진돗개가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잘 돌보며, 진돗개 자신도 행복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지 않을까요?

대한이와 민국이가 애초부터 경찰견으로는 적합치 않았을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가정에 입양되었더라면 낙오한 훈련견이 아닌 사랑받는 반려견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평생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슬퍼지는 금요일입니다.

암수 한 쌍의 앵무새를 키우게 되면 번식기에 알통을 새장에 매달아 주게 됩니다. 새장에 어떤 소재의 알통을 달아 주는 것이 좋을지 알아 보다가 관련된 글을 찾게 되어 공유 차원에서 올립니다. 해외 사이트에서 플라스틱 알통 제품들을 찾다가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로비 해리스(Robbie Harris) 라는 조류 전문 브리더가 적은 글인데 나름대로 의역하여 올립니다.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질문: 제 경우엔 나무 소재의 알통을 저희 집 새들에게 달아 주는 편입니다. 그런데 혹시 금속 소재의 알통이 청소하기도 편하고 좀 더 나은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또 플라스틱 소재의 알통이 시중에 판매 되기도 하던데 사용해도 괜찮은 것인지요. 몇몇 새들은 부리의 힘이 굉장히 세기 때문에 나무가 남아나지를 않아, 알통을 계속 교체해 주어야 하더군요. 플라스틱이나 금속 소재의 알통으로 바꾸더라도 나무 알통만큼이나 앵무새들이 효율적으로 잘 사용할까요? 브리더님께서는 어떤 소재의 알통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답변: 조류 전문 브리더들도 앵무새들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알통을 선호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앵무새는 번식기가 되면, 번식 공간으로 무엇이든 활용하니까요. 번식기에 알통을 설치해 주지 않으면, 심지어는 새장 바닥에 알을 낳기도 한답니다.

다만 번식을 주저하는 앵무새를 알통으로 유인하려는 용도로는 나무 알통이 좀 더 낫다고 봅니다. 앵무새들은 나무 알통을 씹고 물어 뜯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무 알통에 자꾸 가고 싶어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자극하여 번식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금속 재질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알통은 나무 토막을 그 안에 따로 넣어주지 않는 한, 새들이 금속 알통을 물어 뜯을 수 없으니 유인 기능을 할 수 없겠죠.

저는 나무 알통을 사용하고 있으며 자주 교체해 주는 편입니다. 나무 알통은 오염되면 새 것으로 바꿔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교체해 주기 힘들다면 표백제나 조류 전용 살균제를 이용하여 나무 알통을 살균해 주세요. 나무 알통 안팎에 살균제를 스프레이 해주거나 살균제에 알통을 푹 담급니다. 그 다음엔 물로 꼼꼼하게 헹구고 나서 햇빛에 며칠간 바짝 말려 주세요.

금속 알통의 장단점

금속 재질 또는 플라스틱 재질의 알통은 앵무새들이 물어 뜯을 수 없기 때문에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더운 여름철엔 금속 알통 내부의 열기 때문에 알이나 새끼 새가 잘못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키우던 회색앵무에게 금속 알통을 달아 준 적이 있었는데, 어느 여름날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치솟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오후에 그늘에 둔 새장을 확인하러 갔는데, 알통이 너무 뜨겁게 달궈져서 새끼 새 한 마리는 이미 죽어 있었고, 다른 새끼 새들은 낙조 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금속 알통은 쉽게 식지 않으며 대형조는 워낙 스스로 열을 많이 내는 편이라 알통 내부에는 열기가 가득해 집니다. 나무 알통과는 달리 금속 알통들은 표면 온도도 높습니다. 더운 날에는 아무리 그늘에 둔다 하더라도 새끼 새나 알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 한 명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요. 그 친구네 회색앵무가 금속 알통에 알을 낳았는데, 새장이 그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속 알통의 내부가 너무 뜨거워져 알이 모두 “익어” 버렸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새는 무사했고요.

그에 반해, 나무 알통은 아주 무더운 여름철에도 그늘에만 놔둔다면 그다지 뜨거워 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회색앵무와 코뉴어,  소형 잉꼬, 파이어너스 및 대부분의 새들에게 나무 알통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금속 알통은 금강앵무나 코카투에게만 가끔 사용하는데, 이 새들은 나무 알통을 너무 빨리, 너무 많이 갉아내 버리기 때문이죠. 금속 알통에 새가 알을 낳으면 바로 빼서 인공 부화합니다. 나무토막이나 작은 나무 조각들을 금속 알통에 많이 넣어 두면 이런 새들을 알통으로 유인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금속 알통을 이 새들은 잘 사용하고 있으니, 굳이 나무 알통으로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사진 및 자료 출처: http://www.birdchannel.com/media/bird-breeders/about-the-aviary/about-the-aviary-2004-03-03-11061.aspx.pdf)


제 사견을 한가지 덧붙이자면요. 위의 본문 내용 중에 보면, 나무 알통을 교체하기 힘들다면 소독제로 소독을 해 주라고 적혀 있는데, 이게 과연 새에게 좋을지 의문입니다. 아무리 물로 헹궈도 나무에 화학성분이 남게 될 테고, 새들이 그 나무를 물어 뜯으면서 화학 성분을 조금이라도 섭취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나무 알통을 자주 바꿔 달아주는 게 여러 모로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안될 것 같으면 플라스틱 알통에 무해한 나무 조각을 조금씩 넣어 주는 게 어떨까 싶어요. 나무를 넣어주면 습도 조절도 더 잘 될 것 같기도 하구요~ 플라스틱 알통이면, 깨끗하게 관리도 가능하고 금속보다는 여름철에 열기가 덜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아래 있는 Marchioro Cockatiel Nest가 마음에 드는데 나중에 코뉴어를 키우게 되면 한번 사용해 보고 싶네요.

http://www.mammothpetsupplies.com.au/buy/marchioro-cockatiel-nest-mirto-2c-cm-24x19x22h/40274 

1. 대학시절 절친 중 한 명과 직장 동료의 소개팅을 주선한 적이 있었더랬다. 나름 소개팅 코스를 준비한 그 남자분이 내 절친을 데려간 곳은 바로 마술카페... 마술사가 나와서 카드 마술도 보여주고 분위기도 화기애매(?)했는데, 마술사가 모자에서 비둘기 꺼내어 새를 날리는 지점에서 첫 만남의 로맨틱함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내 절친의 조류 공포증 때문! 꾸에에에 꺄아아아아악!!!

2. 어릴 적 우리 집 마루에는 박제된 꿩 두 마리가 놓여 있었다. 한 놈은 장끼였고, 다른 한 놈은 까투리였는데 암수 한 쌍이 정답고 오붓해 보이기는커녕, 뭔가 섬뜩한 느낌이 있어서 나는 그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었다. 이미 죽은 새들이 꼿꼿하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것이 기괴했다고나 할까? 모든 피조물들은 그 생명을 다하고 나면,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모습으로 아름답게 다시 피어나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과연 알고 있었던 것일까?

4. 난 비둘기가 참 싫다. 참새는 무지 귀여운데 반해, 비둘기는 참 지저분하고 징그러운 느낌이다. 비둘기가 머리 위로 푸드득 날아갈 때면, 수백마리의 벼룩과 이를 살콤히 내 머리 위에 흩뿌려주는 듯한 기분! 히치콕 감독의 '새'도 비둘기 혐오증에 한 몫을 했을 터. 데룩 데룩 굴리는 표독스런 노란 눈동자와 딱딱해 보이는 발, 꼬질꼬질한 회색빛 털까지.... 88올림픽에서 수천마리의 비둘기를 하늘로 날리기로 결정한 사람을 멱살잡이라도 하고픈 마음이 울컥 울컥 올라온다고나 할까.

5. 친구네 집에 놀러가기로 약속했는데 앵무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내심 걱정이 앞섰더랬다. 꿩 박제에 대한 트라우마와 비둘기의 불결한 이미지와 영화 '새'에 대한 공포가 합쳐져 조류 자체가 싫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 병아리처럼 노랗고 작은 그 앵무새가 내 손가락 위에 뽀로롱 날아와 앉는데 의외로 귀엽다?! 게다가 조류의 발은 차갑고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 아이의 발가락은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다!!!! 오마나~!!!!!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러다가 나 새를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

저는 지금 레드핀 라이스 피쉬를 새우들과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CRS와 합사가 가능한 어종이라고 하여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하던데, 다 자란 물고기 크기가 2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 어종입니다. 반짝이는 눈이 매력이며, 꼬리 끝에 예쁘게 빨간 테두리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선 많이 키우는 어종이 아니다보니, 수족관을 통한 구입이 조금 힘든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새우와 합사할 수 있는 열대어를 찾고 있던 차에, 2cm도 채 안되는 초소형 어종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지름신께서 제게 냉콤 찾아 왔지요.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그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잘 살 수 있는지 제대로 알아 보지도 않고 무작정 온라인을 통해 6마리를 구입했는데 며칠 되지 않아 두 마리가 훌쩍 용궁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불쌍한 아이들.... 생각해보면 수입되는 과정에서도 힘들었을테고, 택배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데다, 저희집 어항에 투입되면서 수질 변화에서 오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초보 주인의 어설픈 행동들도 한 몫 했겠죠. 몸집이 워낙 작은 아이들이다 보니, 작은 변화에도 힘들어 하는 편이지만 일단 수질이나 수온에 적응을 하면 번식도 하면서 잘 지냅니다. 저희 집 어항에 적응한 세 마리의 아이들이 교배하여 아기 물고기 일곱마리가 태어 났고, 그 애들은 어항에서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집표 F1인 셈이랄까요. ^^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는 사람이 한국에 별로 없다보니, 제 경우엔 사육 방법에 관한 자료 찾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먹이로 뭘 줘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수조 환경은 어떻게 꾸며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사실은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보 주인들을 위한 국문 자료가 있다면 다른 분들이 그걸 참고해서 저보다 더 잘 키울 수 있겠다 싶어서요. 저처럼 어설픈 시행착오도 거치지 않으실테니 레드핀 라이스피쉬들도 더 잘 자랄 수 있을테지요. 그래서 해외 웹사이트를 서핑하면서 번역한 자료에 제 경험을 덧붙여 글을 올립니다. ^^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면서 별별 일들이 다 있었는데, 물고기를 옮기던 과정에서 한 마리가 어망에서 갑자기 폴짝 하고 뛰어 오르더니 가구 밑으로 숨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꺅 소리를 지르고 미친듯이 찾았는데도 못 찾겠더군요. ㅠ.ㅠ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시 가구 밑을 뒤지는데 멸치 직전의 반건조 상태의 그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마음이 어찌나 짠하고 미안하던지... 사죄하는 마음으로 컵에 물을 담아 그 아이를 넣어 두었는데 잠시후 정말 기적처럼 꿈틀하고 그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겁니다!!! 그 대단한 생명력에 놀랐고, 괴롭고 힘들었을텐데 잘 견뎌주어 고맙고 기특했죠.

넌 이름이 뭐니?

우리나라 수족관에서는 레드핀 라이스피쉬(redfin ricefish)이라고 흔히 부르고 미국에선 메콩강 레드핀 램프아이 킬리피쉬(Mekong redfin lampeye killifish)라고 부른다고 합니다만 이 아이들의 정식 명칭은 oryzias mekongensis 입니다. Beloniformes목 Adrianichthyidae과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넌 어디에서 왔니?

메콩강 일대에서 서식하며 태국 동북쪽 지류부터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에서 발견됩니다. 발생지와 관련된 정보가 거의 없긴 하나, 이 종은 민물에서만 서식하며 약산성의 맑은 고인 물에서 주로 삽니다. Rainboth에 따르면 얘네들은 운하, 배수로 및 연못에서 서식하는데, 가는 잎의 수초들이 빽빽하게 자라는 곳에서 특히 잘 자란다고 합니다.

얼마나 크게 자라니?

레드핀 라이스피쉬의 최대성장길이는 15 – 21 mm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입도 굉장히 작아서 어지간히 작은 사료도 잘 못 먹습니다. 이 때문에 CRS와 합사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최대성장길이가 작다고 해서 꼭 새우와 합사가 100%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가 아무리 작은 열대어라 하더라도 포식동물이기 때문에 갓 태어난 치새우는 먹을 수 있으니까요. 새우와의 합사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사니?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려면 어항 크기는 최소한 40 * 20 cm 이상은 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어항에서 키울 수 있으시면 당연히 더욱 좋지요. 얘네들이 아무리 작은 열대어라 하더라도 어항이 너무 작으면, 수질 및 수온의 변화가 쉽게 생겨서 물고기가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는 어항에는 잎이 가는 수초를 많이 심어놓는 것이 좋으며, 수초가 밀집해 있고 다소 어두우며 개방된 구조로 된 어항이 적합합니다. 뒤틀린 나무 뿌리나 이끼가 활착된 유목으로 장식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키우는 것이 이 아이들의 발색을 드러내기에도 적합하며 타 어종과의 합사 시에도 생존 확률을 높여 줍니다.

물의 온도는 23 – 27 °C, pH는 6.0 – 7.5, 경도는 36 – 268 ppm가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CRS는 21-23°C, pH 6.0 - 7.0, 경도 150 - 200 ppm가 적당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러한 수치들을 절대적으로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드핀 라이스피쉬는 수온이나 수질의 변화에 민감한 편입니다. 역으로 이야기 하자면 수질이 조금 나쁘더라도 차라리 꾸준하게 일정한 환경에서는 적응하면서 잘 살지만, pH나 수온의 급격한 변화에는 적응을 잘 못하는 편입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사육 초기에 부분 환수를 하면서 10% 정도만 바꾸는 것이니 별 문제 없겠거니 생각하고 조금 차가운 물을 넣었더니 바로 한 마리가 백점병에 걸리더군요. ㅠ.ㅠ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기 힘들다고 하소연 하시는 분들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름대로 참 맑고 pH도 적절한 물을 정성껏 준비한 다음에 "조금 지저분한 물에서 살던 레드핀 라이스 피쉬" 성어를 이곳에 넣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정성껏 준비한 물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이 녀석은 성장했던 물과 미묘하게 수질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죽거나 약해지기 쉽습니다. 사실 아무 문제가 없는 물이었는데도, 초보 주인은 힘들게 구한 성어가 죽었다는 이유로 물에 대한 의구심들을 품게 되며 쓸데없는 행동들 (소위 물에 좋다는 첨가물을 어항에 넣는다든가 환수를 과도하게 한다든가 예방 치료제라는 약품을 투입한다든가...)할 수 있지요.

아쿠아 토양계의 수조라면 기본적으로 난생 송사리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기억하시면 됩니다. 환경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새로 구입한 레드핀 라이스피쉬들이 죽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에 섣부르게 자신감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죠. 환경 변화에 대해서 얘네들은 섬세한 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 뿐, 꼭 여러분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수질 변화에 민감한 아이들이니 아래 사항들은 꼭 유의해 주세요. ①어항은 물잡이 기간을 충분히 두어 여과 박테리아가 생길 수 있게끔 최소 1주일 이상 물을 묵혀 놓아 주세요. 여과 박테리아가 생기려면 그냥 물을 어항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여과기를 돌리면서 박테리아제를 구입하여 넣어 주는 방법도 있고 달팽이나 수질 변화에 강한 생물들을 미리 투입해 주는 것도 좋아요. 잘 잡힌 물은 탁한 기운 없이 아주 쨍하게 맑고 물비린내와 같은 특별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흔히 집에 어항이 있으면 비린내가 날 것이라고들 생각하시는데 정상적인 상태의 어항이라면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②레드핀 라이스피쉬를 넣기 전, 새로운 수조의 물에 적응할 수 있게끔 물맞댐을 충분히 해주세요. 저는 2~3시간에 걸쳐서 나름대로 천천히 물맞댐을 해주면서 새로운 수조의 온도와 pH에 적응하게 해주었는데도 두 마리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전문가들은 3일에 걸쳐서 물맞댐을 해주라고 권장하네요. ③ 물맞댐 기간 중에는 먹이를 아주 조금씩 급여해야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다하게 먹이를 주는 것은 좋지 않아요.

넌 뭘 먹고 사니?  

레드핀 라이스피쉬들은 크기가 작긴 해도 포식동물이기 때문에 작은 곤충이나 벌레, 갑각류 및 기타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삽니다. 적당한 크기의 사료들은 대부분 잘 먹겠지만, 이것들만 급여해서는 안됩니다. 물벼룩, 알테미아, 장구벌레 등을 생으로 또는 건조시켜서 주시면 물고기 색상도 좋아지고 번식도 잘 된다고 합니다.

제 경우엔 레드핀 라이스에게 맞는 사료를 시중에서 찾는 데에 한참 걸렸던 것 같습니다. 테트라민 미니그래뉼을 부셔서 줘 보기도 하고 오메가3라는 사료를 사서 줘보기도 하고, 자크노 탈각알테미아를 급여해 보기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쿠아프로250는 분말 형태로 되어 있어서 급여하기도 편하고 잘 먹는 편인데 다만 이게 치어들을 위한 사료다 보니 지방 성분이 많아서 급여량 조절을 잘못하면 어항 수면에 기름기가 잘 생깁니다.  탈각 알테미아는 먹이 반응이 조금 떨어지는 편입니다. 메디구피는 사료가 조금 크기 때문에 손으로 살살 부숴서 줘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긴 해도, 먹이 반응은 그 어떤 사료보다 좋았고 쥐포같은 냄새도 없어서 개인적으론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메가3와 테트라민 미니는 먹이 반응도 느리고 입자가 너무 커서 그런지 얘네들이 잘 못 먹습니다.

사료 이외에도 생먹이를 주는 게 좋다고는 하던데, 저희 집 어항엔 코페포다와 미즈 지렁이가 이미 살고 있어서 레드핀 라이스피쉬들이 알아서 잡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레드핀 아이들이 워낙 열심히 사냥을 해서 코페포다의 씨가 마를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간간히 조금씩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는 워낙 몸집이 작은 애들이라서 입도 짧습니다.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으로 사료를 주세요. 많이 줘봐야 수질만 탁해지니까요. 급여하는 양은 물고기 크기나 숫자에 따라서 달라 지니까 정답은 없을 것이고, 대충 봐서 2~3분 내에 먹어 치울 정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함께 키울 수 있는 어종이 궁금해

레드핀 라이스피쉬는 꽤 얌전한 편이지만 워낙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다른 종들과 합사하기가 용이하지는 않습니다. 몸집이 큰 어종과 잘못 합사시켰다간 생먹이가 될 거에요. 다른 어종들과 함께 키우고 싶다면 비슷한 크기의 종으로 보라라스류, 소형 라스보라, 다니오네라, 민물 새우류 (야마토새우, 생이새우류)와 합사가 가능한데요. 새우와의 합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소형 구라미나 아주 작은 베타 종류와도 합사 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번식시킬 목적이라면 단독으로 키우는 것이 좋으며 다른 송사리 과와는 교잡될 수 있으니 함께 키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동종에게는 공격적이지 않으며 8마리 또는 그 이상으로 키우면 보다 효율적이고, 좀 더 대담하게 활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는 수컷? 암컷??

수컷의 성기는 작은 관 형태로 생긴 반면 암컷의 성기는 두 개의 엽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수컷은 몸통이 암컷에 비해 날렵한 편이며 밝고 붉은 오렌지 빛의 테두리 줄무늬가 꼬리 지느러미에 있는 반면, 암컷의 꼬리 색은 훨씬 흐립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저는 그 둘의 구분이 참 어려운데 배 모양과 꼬리 색깔을 보면 조금씩 감이 옵니다. 꼬리 색깔이 예쁘고 배가 늘씬하면 수컷, 꼬리 색이 흐리고 배가 볼록하면 암컷입니다.

레드핀 라이스피쉬, 가족의 탄생!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운지 한달쯤 되었을 때, 어느날부턴 이틀 정도 이 아이들이 사료를 먹지 않는 겁니다. 무슨 병이 생겼나 싶기도 해서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항을 유심히 살펴보는데 웬 벌레같은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어항에 떠있는 거에요.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 보는데 바로 레드핀 라이스피쉬의 치어들이었습니다. 치어들인데도 눈에서 레이저를 슉슉 발사하면서 어찌나 반짝 반짝거리던지~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얼른 그 아이들을 뜰채로 떠서 분리해 주었지요.

레드핀 라이스피쉬는 번식시키기 상당히 쉬운 편이며 다산하는 편으로써, 성체 암컷의 경우 좋은 환경에서는 매일 또는 수일에 한번 꼴로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산란은 보통 이른 아침에 이루어지며 색이 짙어진 수컷이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서로 영역 싸움을 합니다. 끈끈한 알들이 한꺼번에 배출되며 동시에 수정이 이루어지는데 한동안 암컷의 몸에 매달려 있다가 수초나 적당한 장소에 놓여집니다.

카봄바(붕어마름)나 택시필리엄과 같은 가는 잎 수초가 가장 좋지만, 인조 산란처나 여타 보조기구 사용도 가능합니다. 저는 부상수초들을 띄워 놓았더니 암컷이 부상수초 뿌리에 알을 붙이더군요. 부화기간은 온도에 따라 다르긴 하나 보통 1-3주 가량 소요되며, 성어들은 알을 먹지는 않지만 돌아 다니는 치어들은 잡아 먹습니다. 수조에 수초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면 소수의 치어들은 살아 남겠지만, 되도록 알이나 치어들을 분리해서 치어항에 넣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치어들에게는 탈각 알테미아 등을 급여하시면 되지만, 그냥 주면 잘 못먹고 더 미세하게 부숴줘야 합니다. 부화일이 서로 다른 치어들을 한꺼번에 키울 때에는 크기 차이가 나게 되면 더 작은 치어들이 잡아 먹힐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저는 얘네들이 난태생이 아니고 난생이라는 걸 알고나서, 즉 치어로 낳지 않고 알로 낳는다는 걸 알고서 혹시나 싶어 유심히 관찰해 보았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알이 부상수초 뿌리들에 다닥다닥 붙어 있더군요. 뿌리에 붙어있는 알들을 성어들과 분리해 두었더니 건강한 치어가 태어났고 분리해둔 덕분에 다른 성어들에게 잡아 먹히지도 않고 부화해서 현재 잘 자라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레알, 진짜로 새우와 잘 지내?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새우를 키우는 분들은 이게 제일 궁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드핀 라이스피쉬를 키우고나서 아직까지 죽은 새우는 없습니다. 레드핀 라이스 피쉬들이 겁이 참 많아서 새우들이 근처에 오기만 해도 옆으로 쇽쇽 피해가는 편이고 새우와 생활하는 영역도 그다지 겹치는 편은 아닌데다 호기심도 많지 않고 새우를 건드리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크기가 아무리 작다해도 얘네들이 포식동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 자란 성어의 크기가 2cm에 불과한 초소형 어종이라 입이 작아서 새우를 '못' 먹는 것 뿐이지 새우를 '안' 먹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레드핀 라이스피쉬가 치비 생존율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자기네 동족인 치어들도 그렇게 열심히 잡아 먹으며 사료엔 입도 안 대는 애들인데, 뭘 기대하겠습니까? 새우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ㅠ.ㅠ (새우와 열대어의 합사에 대한 포스팅 보러가기)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레이저를 쏘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과 오렌지빛 꼬리 지느러미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어항에 있던 코페포타와 미즈지렁이는 확실히 줄었고 새우들만 있어서 밋밋하던 어항에 열대어들이 생기고 나니 색다른 재미도 생겼습니다. 새우항의 적으로 불리는 플라나리아도 잠깐 생겼었는데, 그것도 이 기특한 녀석들이 꼭꼭 쪼아서 잘 먹어 치워 주더군요. 지네들끼리 몰려 다니면서 가끔 유영하는 모습도 보여주니 그 역시 큰 즐거움입니다. 새우들이 폭풍 번식을 하지는 못할지 모르겠으나, 자연 생태계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 집니다. 새우를 키우는 목적이 번식인 분들께는 절대 비추하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새우와 이웃하여 함께 키울 친구로는 참 매력있는 물고기입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참 좋은데, 다른 사람도 얘네들을 좋아하란 법은 없으니까 입양 여부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세요. ^^

참고자료: http://www.seriouslyfish.com/species/oryzias-mekongensis/

http://kcj.cside.com

http://www.aka.org

http://www.killifis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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